피규어 외에도 만화 초판본, 애니메이션과 영화 필름을 담은 한정판 액자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진 피규어뮤지엄W]
조민기·양현석·이승환·허지웅·케이윌·빅뱅 탑 등 유명인들의 수집 목록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피규어다. 피규어는 더 이상 아이들만 갖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성공한 남자들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아트 토이, 예술품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5일 오전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피규어뮤지엄W’. 로비에 들어서자 초대형 아이언맨과 범블비(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오토봇 정찰병),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빛나는 피규어 아트 픽셀(게임 캐릭터 이미지를 점으로 만들어 이미지화 한 것)이 시선을 끌었다. 건물 자체가 박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피규어 같았다.
이곳에서 만난 우인영(24)씨는 피규어를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왔다고 했다. “한정판 피규어나 전 세계 하나뿐인 피규어들이 있다고 해서 구경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의 남자친구 이진호(25)씨는 건담 컬렉터다. 이씨는 “피규어에 빠진 사람들 중에 희귀 피규어를 구할 수 있는 일본 오사카의 전자상가 ‘텐텐타운’에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귀한 피규어가 이렇게 많은 걸 보니 정말 흥분된다”고 말했다.
영화 ‘배트맨 2’ 촬영에 실제로 쓰였던 배트 모빌 모형으로 전 세계 단 하나뿐이다. 사진=김경록 기자이 뮤지엄이 문을 연 건 지난달 28일이다. 개관일에도 이곳에 왔었다는 윤성호(35)씨는 “어린 시절 추억이 그대로 있는 피규어를 보면서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다”며 “남자는 평생 애라는데 장난감에 열광하는 내 모습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며 웃었다.
이곳에는 1000여 종의 피규어가 6층에 나뉘어 전시돼 있다. 트랜스포머·터미네이터·에일리언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사용된 소품이나 아이언맨·배트맨·토르 같은 미국 영웅 시리즈 피규어, 건담·태권브이·아톰·에반게리온 등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만화 캐릭터 피규어 등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들이 있다. 피규어 매니어들이 가장 열광하는 테마전시실에는 이소룡 사후 40주기를 맞아 특별 제작된 이소룡 한정판 피규어, 전 세계 단 하나뿐인 스컬 펜저,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직접 입었던 실제 의상을 착용한 1대1 피규어 같은 소장 가치 높은 피규어를 만나 볼 수 있다.
장난감 빌딩 만든 죽마고우
이 거대 ‘장난감 도시’를 만든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인 유병수·임정훈(47) 공동대표다. 전시된 피규어는 두 사람과 이들의 어린 시절 친구인 다른 두 명의 피규어 컬렉터 등 모두 네 명이 수집한 개인 수집품이다. 스스로를 강남 토박이라고 소개하는 이들은 “우리가 자라난 동네에 우리들이 꿈이었던 피규어 성지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광고 CF 감독 출신, 임 대표는 방송국 미술 감독 출신으로 각기 장점을 살려 건물 디자인을 하고 건물 내 영상과 사진들을 제작했다. 실내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프라모델을 완성하듯 즐겁게 집중하며 이뤄냈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임 대표는 “우리는 진품이나 희소 가치가 있는 피규어가 아니면 인정을 않는다. 이곳을 찾는 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피규어만 선별 전시했다”고 말했다.
요즘 남자들이 피규어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유 대표는 “현실에서 오는 압박이나 책임감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어린 시절 꿈꿔온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서”라고 답했다. “귀한 피규어를 어렵게 구했을 때 느끼는 쾌감과 뿌듯함이 있다. 또 조립하는 과정에서 평온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것들이 피규어를 수집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힘들게 모아 애지중지 다루는 피규어를 대중에게 전시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여자들이 한정판 핸드백이나 구두를 신고 다니며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듯 피규어를 어느 정도 수집한 후부터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현재 전시된 피규어는 1000여 종이지만 서울 성수동 300여 평 창고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피규어가 박스에 담겨 있다고 한다. 유 대표는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갯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건담 하나에 추정가 2억원
다양한 캐릭터의 어벤저스 피규어.이들은 피규어 관련 산업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키덜트 인구는 500만 명 정도, 키덜트 관련 제품의 시장 규모는 7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20~40대 구매력 있는 남성들이 피규어를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예술 가치가 높은 피규어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피규어 아티스트 중에 한국인이 많다는 것도 피규어 산업의 전망을 밝게 만들고 있다. 유 대표는 “세계적 피규어 기업들이 한국인 아티스트들을 앞다퉈 스카웃하고 이들의 피규어가 세계적 스타들의 애장품으로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피규어는 손수 제작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또 어떤 아티스트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피규어뮤지엄W에 전시 중인 헐크버스터의 경우 2년여 전 구입 당시 150만원이었는데 현재는 1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전 세계 하나뿐이라는 ‘RX-93V 건담’의 현재 인터넷 추정가는 2억원 정도이며 앞으로도 계속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 대표는 “피규어는 예술 작품과 비슷하다”며 “어떤 작가의 작품인가, 희소성이 있는가,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피규어 가치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도 피규어·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가 11일 개관한다. 토이키노에는 미키마우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겨울왕국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피규어나 도라에몽·심슨 등 유명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 등이 전시돼 있다. 손원경(44) 토이키노 대표 역시 40만여 점의 피규어를 보유한 피규어 수집광이다. 26~29일 aT센터(서울 서초구)에서 국내 최초 키덜트 라이프스타일 페어인 ‘2015 키덜트 엑스포’도 개최된다.
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5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명절 당일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