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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적생 어머니의 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어느 제적생 어머니의 편지(어제 중앙일보 사회면) 를 읽은 독자들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캠퍼스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아들을 온 가족이 달려들어 끌어내고 그를 끝내 경찰서에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부모의 심경은 누구라도 짐작이 간다.
그날 저녁 아들을 경찰서에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벽을 붙잡고 눈물을 삼켰다』 는 대목은 예사로 읽혀지지 않는다. 아마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들이 그랬으리라.
필경 이것은 어느 한 가정만의 비탄과 비행일 수는 없다. 오늘의 우리나라 대학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었던 현실들의 한 단면이고 보면 그런 일은 우리와 먼 얘기, 무관한 일들이 아니다.
새삼 우리 사회는 왜 이런 일들을 다른 사람의 일로만 덮어두고, 쉬쉬해 왔는지 주위를 돌아보게도 된다. 분명 그것은 우리 사회 공동의 문제요, 우리가 함께 풀어 가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는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학원소요문제로 해서 얼마나 무거운 긴장과 얼마나 많은 낭비들을 강요당해 왔는가. 소요의 당사자들은 무제한의 시간과 기회를 잃어 왔으며 그들의 부모와 가정은 매일 매일을 초조와 불안 속에 견뎌야 했으며, 사회는 사회대로 정신적, 물질적인 낭비를 일삼아 왔다.
어디 그뿐인가. 보이지 않게 잃어버리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이런 일로 인해 활기를 잃으면 그것은 모든 분야의 모든 얼에 속속들이 파급되고 결국은 나라의 존립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은 기우나 과장이 아니다. 정치적 선전에 영합하는 얘기는 더구나 아니다.
『이제 그만…』 하는 심정은 침묵한 대다수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보아도 좋다. 학원소요가 물고 올 결과를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알고 또 보아 왔다.
바로 그 어머니의 편지가 단순히 감상이나 애절한 수사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편지의 항간엔 이런 사연도 있었다.『부모가 잡아오면 구속하지 않겠다』던 경찰간부의 말은 어디 가고, 그후 70일이 가깝도록 그 아들은 지금도 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의 학원소요가 당국에 의해 얼마나 도식적으로 계획 없게 처리되었는가를 엿볼 수 있다.
학부모도, 교수도, 대학당국도 끼어 들 여지없이 학원소요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요식적으로만 처리해 온 것은 아닐까.
이 점에선 정부 당국도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대학가의 문제는 더 이상 물리적인 힘에만 맡겨 놓을 수 없는 국면에 와 있다.
지난 1960년대, 70년대 초까지의 일본대학소요는 세계가 주목하는 바였다. 한때 적군파까지 출몰해 72년인가는「아사마」산장에서 일본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혼란과 소요를 가라앉힌 것은 경찰의 최류탄도, 방망이도, 총격도 아니었다. 일본 여론의 준엄한 심판은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일본국민 스스로가 목청을 돋워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도 영악한 일본국민들은 학생들의 소요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것, 없어서는 안될 것을 잃어버릴까 걱정한 것이다.
1970년 도에 겨우 국민소득 1천9백65달러(1인당)였던 일본이 불과 10년 만인 80년대에 9천 달러를 넘는 기록을 남긴 것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그것은 일본의 일일뿐이다』고 말할지 모른다. 물론 일본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나라가 지금 어디 쫌 달려가고 있는 가도 좀 볼 줄 아는 지혜와 도량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문교당국은 최근「대학의 자율」을 약속하는 담화들을 거듭 발표했었다. 우리는 솔직히 그런 여유와 그런 인내가 얼마나 지탱될 지 다소 머리를 갸우뚱하게도 된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 역시 문교당국이 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대학과 국민의 협력 속에 지켜지도록 하는 노력도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 그런 노력이나 제대로 해보았는가.
한편 정부당국은 대소고처에서『왜 학생소요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겸허한 성찰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 그런 성찰의 결과는 국민 모두의 마음속에 신뢰와 함께 전달되고 이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 제적대학생 어머니의 편지를「한 어머니의 편지」아닌 「모든 어머니의 편지」로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새 학기가 되어도 기쁘지 않고, 새 봄이 되어도 마음이 무거운 이 현실은 이제 그만 끝나야 한다. 학원 문제는 국민의 관심 속에서 국민의 과제로 풀어 가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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