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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율과 복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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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겨울 추위 속 동면중인 대학의 철 아닌 진통은 연말 정부가 취한 재적학생 복적의 실현을 앞두고 대학과 복적대상 재적학생간의 불협화에서 비롯되는 심상치 않은 잡음이다. 5·17이전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소요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고개를 드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같은 우려를 대변하듯 서울대 이현재총장은 26일 기자회견을 자청, 복적학생 문제에 따른 대학의 고충을 사회에 호소했다. 한마디로 일부 좌경의 색채마저 띠는 과격학생그룹에 의해 건전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계속되어온 대학 안의 현실참여발언과 행동이 근래 오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대학의 안정과 면학분위기는 물론 자칫하면 사회전반의 안전이 근본적으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실토다. 지금까지 「보도」의 사각에서도 꾸준히 계속되어온 대학생물의 현실비판운동은 이제 대학당국이 정식으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묻혀진 자료들을 더듬어 오늘의 대학과 학생운동의 흐름을 연재기획으로 해부해본다.
21일 하오 3시, 서울의 사학명문 S대 노천극장. 점퍼와 캐주얼차림의 남녀학생 70여 명이 영하10도의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땅바닥에 연좌농성을 벌였다.
16일, 20일에 이은 세번째 제적생들의 「복교대책위원회」 집회다. 제적생들 추위엔 학부모 30여명이 몰려 서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들딸을 안스럽게 지켜보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단상엔 『민주화된 학원으로』 『선별복교거부』 등의 구호가 어지럽게 나붙었다.
제적생들이 대표로 선출한 5명의 학생이 단상으로 뛰어올라 열변을 토했다. 『복교문제를 둘러싼 개별접촉을 거부한다. 복교대책위원회를 통해 단체교섭을 해야한다.』
이어 다른 학생이 『학원민주화와 함께 사회전반의 민주화조치서 요구한다』고 외쳤다.
교무처장 등 3명의 교수가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여러분의 응어리는 잘 알았다. 여러분에게 절대 불리하게 처리하지 않겠으니 개별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자』고 종용했다. 이곳저곳에서 『필요 없어!』 『꺼져!』 하는 빈정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스승과 제자사이의 재회는 이렇게 처음부터 살벌한 분위기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져보고 있던 50대의 한 어머니는 「이놈아! 오늘 너 죽고 나죽자』는 외마디소리와 함께 아들에게 달려들어 따귀를 때리며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아들을 연좌대열에서 떼어놓으려는 어머니의 노력도 허사였다.
복교허용조치 발표 한 달. 봄을 기다리는 캠퍼스는 이 한 달간을 전원복교거부라는 의외의 이슈로 초입부터 진통을 겪고있는 것이다.
복교조치에 앞서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받으려는 학교측의 방침에 대해 일부제적학생들은 그런 다짐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조건 받아준다고 해도 단체행동을 통해 복교여부가 결정돼야 한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해직교수·해직근로자·해직언론인의 원 소속근무처 복귀조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며 학원문제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치적 이슈까지 내걸고있다.
제적학생들의 단체행동 움직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국65개 대학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전국연합회 구성움직임까지 보이면서 학교와는 단체로만 접촉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1천4백여 제적생의 개별접촉의 길을 막고 있다. 서울대 이현재 총장은 이런 움직임을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우려할 사태로 파악, 대학이 위기에 섰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장은 26일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나라 40년 대학사의 미결과제는 대학의 자치능력확보와 학원의 안정』 이라고 전제, 『모처럼 주어진 기회에 모든 대학인은 최대한의 자율역량을 발휘, 명랑하고 안정된 학원을 정착시키자』고 호소했다.
제적학생복교조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10·26사태이후에 있었던 것처럼 1년도 채 못돼 대부분의 복교생이 다시 학원사태에 휘말려 제적을 당하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캠퍼스로 다시 돌아온 학생들이 면학에만 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수와 대학당국이 학생지도나 대학으로 밀려들어오는 외부의 힘을 막는 자율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데도 그 원인이 없지 않았다.
『정부의 구속학생석방과 제적학생 재입학 허용조치가 지금까지의 타율과 반대학적 요인을 대학에서 청산하고 대학을 원래의 모습으로 정상화하는 일대전기가 돼야한다』는 이 총장의 촉구는 이 같은 맥락에서, 대학이 그 자율권을 지키겠다는 결의의 표시로 보여진다.
그러나 일부 제적학생들은 그 동안 대학당국의 이 같은 기대는 물론, 자녀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게 된 것을 기뻐하는 부모의 심정을 외면해 왔다. 학교로 돌아가는데 있어 제적당시 요구했던 교내외 관련사항의 시정을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23일하오 E여대 법정대301호실. 재적학생들이 대표 3명을 뽑아 학생처장에게「노동자·농민권익보호」 「교내민주화」 「해직교수 즉각 복직」 등을 요구했다. 딸들의 행동을 걱정하며 따라왔던 한 어머니는 주동학생용 향해 『야×년아, 너 때문에 우리 애도 학교에 못 들어가겠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제적생들의 요구를 지켜본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들의 요구조건이 학교로서는 해결하기 어렵고, 이 문제 해결 없이 복교를 않겠다고 버틸 경우, 다시 얻은 복교기회를 놓칠지 모른다고 판단, 자녀들을 설득하러 발벗고 나서고있다.
지난 14일 제적학생총회에 참가한 국립S대 이모군(25)은『복교허용조치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던 부모님의 환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3년 동안 쫓겨나 같이 방황해온 친구들에 대한 의리 때문에 단체모임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나처럼 복교를 원하는 동료가 대부분인줄은 잘 안다』며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
이 총장은 『복교에는 대학인으로서 충심으로 학업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이외에 아무런 조건이 없다』고 전제, 『일부 복교대상자들이 정치적인 선행조건을 제시한다든지, 집단행동을 꾀하는 것은 대학본래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대학이란 각자가 전공분야연구동기와 철학을 달리하는 다양성을 지닌 지성인의 사회이기 때문에 획일성과 집단의사가 강요될 수 없는 것임에도 대학본연의 이 같은 정신을 부인하는 행동을 용인한다면 대학의 자율과 정상화의 길은 열릴 수 없다』고 경고했다.
고대 심재우 교수(법철학)도 『제적학생들이 복교하는데 선행조건을 붙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말하고 『제적생들은 무조건 학교로 돌아와 학생본연의 면학에 힘써야한다. 복교문제를 정치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잘라 말했다.
제적학생들의 집회에까지 따라다니며 애태우는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를 끌어내는 심정은 이와는 다르지만, 극소수의 강경파에 자기자녀가 휩쓸려 피해를 당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자녀를 지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우선 주어진 복교의 기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은 학내소요와 이를 제지하는 당국의 힘이 반복적으로 대립하는 악순환으로 황폐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젊은 지성의 양심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조그만 움직임을 보여도 연행-구속-기소-제적-복역의 기계적인 과정을 거쳐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을 지도해야할 교수는 조그만 발언권행사도 할 수 없었고, 학생들은 그런 교수를 불신할 뿐 아니라 체제자체를 부인하려는 경향에 빠져들기도 했다.
제적생 복교조치와 관련, 대학총장의 입장을 대표해서 밝힌 것으로 보이는 이 총장의 기자회견은 그런 의미에서 제적학생에게 보내는 당부인 동시에 이들을 맞을 대학당국의 자아반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학생을 천둥벌거숭이로 외부의 힘에 노출시켜온 책임의 큰 부분은 총학장을 비롯, 교수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대학이 확보하려는 자율과 정상기능회복을 위해서는 급진좌경사상의 싹은 단호히 배제돼야하는 것과 동시에 젊은 지성의 건전한 현실비판은 너그럽게 수용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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