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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픽] 프로야구 스피드업 논란

중앙일보

입력

야구를 빨리 진행하자는 취지의 '스피드업' 규정이 몸살을 앓고 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스피드업 규정은 시범경기에서도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KIA 김민우(36)는 8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NC와의 시범경기 4회 초 황당한 삼진을 당했다. 풀카운트에서 무심코 타석을 벗어났다가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해 삼진아웃된 것이다.

시범경기 개막일인 지난 7일 창원에서는 KIA 최용규(30)가 1회 초 타석 볼카운트 1-1에서 무심코 타석에서 두 발을 뺐다. 곧바로 스트라이크가 선언돼 최용규는 볼카운트 1-2에 몰렸다. 대전경기에서는 한화 김경언(33)과 LG 이진영(35)이 나란히 '스피드업 스트라이크'를 먹고 삼진아웃 됐다. 스윙도 못 해보고 삼진을 당하자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이진영은 "타자의 자유를 너무 억압했다. (자유가 없는) '소련 야구'인 줄 알았다"며 농반진반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스피드업 개정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경기 평균 소요시간이 3시간 27분에 이르자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①투수 교체는 2분 30초 내에 완료하고 ②새로운 타자는 10초 내 등장하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며 ③타자의 두 발이 타석에서 벗어나면 스트라이크를 주고 ④사사구로 출루할 땐 1루까지 뛰어야 하며 보호 장비도 1루에서 풀고 ⑤판정 어필은 감독만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스피드업의 필요성에는 야구인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규정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며 벌이 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약 2.2㎡(세로 1.8m, 가로 1.2m) 크기의 타석에 타자를 묶어 놓는 건 타자의 루틴(습관)과 타격 리듬을 흔든다는 것이다.
10개 구단 감독 모두가 이를 비판했다. 김성근(73) 한화 감독은 "야구가 재미없어졌다. 문제가 있다"며 "승부처에서 맥이 끊길 수 있다. 룰이 경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9회 말 동점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타자가 무의식적으로 두 발을 타석에서 뺐다면 심판이 어떻게 해야 하나. 판정 하나로 승패가 바뀔 수 있다.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해도 문제, 하지 않아도 문제"라며 우려했다.

현재로서는 스피드업 규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절대적으로 많다. 김인식(68) KBO 규칙위원장은 "시범경기가 끝나면 스피드업 규정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대 목소리를 의식해서 제대로 시행하지도 않고 다시 룰을 바꾸는 것도 난센스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스피드업 개정안을 만든 야구인 8명은 현장의 반발을 예상했다. 스피드업 회의의 한 참석자는 "과거 규정으로도 타석을 벗어난 타자에게 경고를 주고, 또다시 타석을 벗어나면 스트라이크를 선언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이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시범경기에서의 논란은 스피드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투수가 공 하나하나를 던질 때마다 타석을 벗어나는 타자도 있다. 이런 선수는 다른 선수보다 타석당 2분 이상을 더 쓴다. 새 규정이 잘 지켜지면 경기당 10분 정도를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도 스피드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불필요하게 시간을 끈 선수에게 최대 500달러(약 55만원)의 벌금을 부과,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빅리그의 지난해 경기시간은 평균 3시간 2분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스피드업 규정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평균 3시간 17분이 걸린 일본 프로야구도 공수교대 시간을 줄이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야구 룰은 미국이 만들어 먼저 시행했다. 비디오 판독 같은 혁신적 제도도 지난해 미국에 이어 KBO가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스피드업 위반 시 스트라이크를 주는 건 KBO가 앞장서고 있다. KBO는 지난해 극심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 때문에 경기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고민했다. 가장 급한 상황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프로야구가 반대 여론과 싸워가며 스피드업 룰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야구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집중력은 100분을 넘기기 힘들다. 러닝타임 2시간을 넘기는 영화가 많지 않은 이유다. 야구는 응원하며 즐기기 때문에 집중력이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하지만 3시간을 초과한다면 팬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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