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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사회공헌도 전략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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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 전 한 신문 칼럼에서 필자에게 방진복 차림의 '차가운' 모습뿐 아니라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연탄을 나르는 '따뜻한' 모습도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내가 그렇게 매정하게만 보이나 하는 허탈함,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반도체만큼 따뜻한 게 또 어디 있는데'라는 아쉬움 등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튼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자칫 중요한 걸 놓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해 주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늘이 많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오히려 기술 소외계층이 비례해 늘고 있어 안타깝다. 정보의 격차가 계층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소위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현상이다. 기술 소외현상의 해소야말로 원인 제공자인 기업의 책임이다. 어깨가 무겁다. 기업은 기부 등을 통한 사회공헌을 해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이익과 고용의 창출이 곧 사회적 책임의 완수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필자 생각은 전자다. 우리 그룹 창업이념인 '사업을 통해 국가에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의 '사업보국(事業報國)'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미국 작가 도로시 파커는 기부금을 낸다는 뜻인 'Check Enclosed (수표가 들어 있습니다)'를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했다. 기부 문화가 일상화된 미국답다. 기업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결국은 광의의 사회 공헌이지만, 대가를 지불하고 그 제품을 살 능력이 있는지, 누구나 다 그 제품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지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회공헌의 궁극적 목적은 소외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다. 사회공헌도 기업경영과 같아 이제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금액의 다과가 문제가 아니라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을 철저히 분석, 적재적소에 후원하는 세심한 '차별화 전략' 말이다. 우리 그룹의 '사랑의 빛 찾아 주기'라는 무료 개안수술 캠페인에서는 수술장비를 구비하고 의사가 동승한 '안과 버스'가 환자들을 직접 찾는다. 시력 장애인들에게 병원으로 찾아 오라는 건 난센스 아닌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 채 100만원 벌었으니 10만원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사회공헌 다 했다는 건 무책임한 사회적 책임의 전형이다. 명절에나 등 떠밀리듯 하는 형식적이며 자기 과시적인 불우이웃 돕기에서도 빨리 벗어나자.

우리 그룹에는 올해로 창단 11년째를 맞는 '사회봉사단'이 있다. 웬만한 회사와 맞먹는 규모의 상시 조직이다. 이곳에서 연간 5000억원에 육박하는 사회공헌 비용이 집행된다. 이곳의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임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다.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필자와 함께 땀 흘리는 임직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들의 회사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다. 사회공헌도 어느덧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선순환 고리의 중요 경쟁요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기업의 성장은 사회로부터 빚을 진 결과다. 기업이 성장하면 책임의 크기도 비례해 커지며, 그 범위는 무한대다. 장애인, 무의탁 노인, 소년소녀 가장들도 엄연한 우리 사회 구성원인데 과실이 생기면 이들과 나눠야 하는 건 당연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 당연한 도리를 혹시나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참이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