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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선거에 연연 말고 동아시아 보는 정치 펼쳐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7호 14면

[정계 은퇴한 이부영 고문]

정치권 퇴장하는 여야의 두 중진

이부영(73) 전 의원이 지난달 1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강동갑 당협위원장 직에서 물러나며 여의도 정치에서 완전히 떠났다. 그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뒤 민주당과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등을 오가며 국회의원(3선)과 열린우리당 당의장 직을 역임, 야권의 대표적 원로로 꼽혔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유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은퇴를 생각했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다 하더라도 최고령 의원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국회의원이라는 일상적 업무에 쫓기기보다 그간 펼쳐온 동아시아 평화운동에 주력하고 싶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저 때문에 상처를 입은 분들에게 용서를 빈다”고 했는데.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조문 사절을 보낼 의향이 있느냐고 통일부 장관에게 물었다가 상이군인들이 항의하며 몰려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엔 일종의 조문 외교를 주장한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6·25 참전용사나 유가족에겐 분개할 만한 소리로 들렸을 법했다. 한번은 치러야 할 논의를 내가 제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앞선 자는 대가를 치른다’는 성경 말처럼 내가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간의 정치 역정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꼽는다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활동을 하다 투옥됐던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당국이 은폐·조작하려 한 사실을 알게 됐다. 감옥에서 특종을 한 거다. 긴박하게 취재해 친구를 통해 정의구현사제단에게 넘겨 세상에 알렸고,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그렇게 힘들게 이뤄낸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었는데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옥중에서 지켜봐야 했다. 또 하나는 2004년 국가보안법 파동 때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서 내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 5개 독소조항을 폐지하는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런데도 당내 강경파 의원들은 무조건 폐지만을 고집해 결국 여야 합의는 깨졌다. 이후 국보법은 한 점, 한 획도 고쳐지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한나라당 입당과 탈당은 이 전 의원의 정치 경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선택에 후회는 없나.
“97년 대선 때 DJP 연합을 보면서 정권 획득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세력보다는 한나라당이 낫다고 생각해 입당했다. 2000년 6·15 선언 때 당내에서 내가 유일하게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날 배신자로 낙인찍고 노골적으로 당에서 나가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 탈당을 결심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신당을 추진하자 실행에 옮겼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치인 이부영의 몰락 과정이었다. 나는 언론인·운동가적 마인드로 정치를 했고 권력정치엔 적합하지 않았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 평화운동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일본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일본 정치인들과 연대해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평화헌법이 파기돼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북한 핵무장도 막을 수 없다. 이를 위해 평화헌법 핵심인 9조를 지키자는 일본 단체 ‘9조회’와 평화헌법 노벨 평화상 추천운동을 벌여온 다카스 나오미를 2015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국내 원로 50인이 함께 추천했다. 평화헌법 수호자들에게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총 한 방 안 쏘고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을 없앨 수 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는.
“여의도 정치에서 살아남는 데 연연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보는 정치를 하라고 하고 싶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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