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숙한 한·미동맹 테러에 굴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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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정부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테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표명했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한·미동맹은 공고하다”며 “우리는 분별없는 ‘폭력 행위(acts of violence)’에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주에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의 특명전권대사가 피습당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 일어났지만 이로 인해 한·미동맹이 손상을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미리 선을 그은 것이다. 테러라는 표현 대신 개인의 범행에 무게를 둔 ‘폭력 행위’란 표현을 쓴 점도 눈길을 끈다. 개인의 비이성적 행동과 국가 관계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미국의 냉정하고 차분한 상황 인식이 돋보인다.

 미 정부만이 아니라 미국 내 대부분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번 사건을 극단주의자의 돌출행동으로 보고, 한·미 관계에 영향은 없을 것이란 시각을 보이고 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번 사건은 한·미 관계를 균열시키려는 북한과 남한 내 일부 세력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야만적이고 비겁한 행동의 결과로 오히려 한·미동맹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어느 사회에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라며 “이번 사건은 극단주의자의 소행이지 한국 국민에 의한 정치적 행동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에서는 야만적 테러를 규탄하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네티즌들의 글이 인터넷과 SNS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괴한의 습격으로 피를 흘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리퍼트 대사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수술 후에는 한국인들의 지지와 성원에 오히려 감사하며 한글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이 글은 30여 분 만에 약 1000명에 의해 리트윗됐다. 리퍼트 대사의 트위터 팔로어는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수천 명이 늘어 1만 명을 돌파했다.

 역대 최연소 주한 미 대사로 지난해 10월 말 부임한 리퍼트 대사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와 음식을 접하며 한국인들 속으로 파고드는 정력적인 공공외교를 펼쳐왔다. SNS를 이용한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리퍼트 대사는 한국인들과 더욱 끈끈하게 맺어지고 있다. 미국대사를 공격해 한국과 미국 사이에 틈을 벌이는 것이 테러의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이번 사건이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극단적인 외세 배격 성향을 가진 한 개인의 비이성적 돌출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정확한 범행 동기와 배후 여부 등을 밝혀내야겠지만 섣부른 예단으로 공연히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