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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과 「남녀를 구별 않는것」의 혼동은 없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국민학교가 겨울방학을 하면 날, 둘째 딸 유진이가 어쭙잖은 기색으로 들어서더니 「과학동산」에 뽑혀가지 못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요컨데 당연히 자기가 가야할 터인데 선생님이 여자인 자기를 제쳐놓고 자기 보다 성적이 하위인 남자아이를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도 선생님은 언제나 남학생 편이고 여지 아이들은 이러해야 한다, 혹은 여자가 그래서 되겠느냐는 식의 교육을 하시기 때문에 자기반의 여자친구들은 그 선생님을 「조선파」라고 불러 왔는데 오늘로써 새삼 조선파이심을 재확인했다는 불평이었다.
조선파선생님­.국민학교 5학년 아이들의 머리에서 짜낸 담임선생님의 별명치고는 제법 고상하고 나름대로의 철학이 깃든 작품이라고까지 여겨지면서, 일흔이 넘으신 나의 어머님, 나이 마흔의 나, 그리고 11살난 딸의 세대에 이르는 동안의 우리여성의 위치를 생각하게 된다.
딸자식도 자식이고 따라서 아들과 똑같이 키워야한다는 나의 아버님과는 달리 어머님은 항상 여성다용을 강조하시고 남편에 대한 인종을 미덕으로 삼으신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이 세태를 거부하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끔은 지나온 어머님 본인의 세월이 답답했고 한스러웠음을 말씀하시고, 그래서 딸도 아들과 독같이 길러야 한다는 아버님의 지론을 내심 반가와 하면서 너를 키웠으니, 이 좋은 세상에 네 능력껏 뻗어 나가라고 격려하시는 어머님이시다.
이렇게 「초개화파」인 아버님과 「수정조선파」인 어머님 틈새에서 자란 나는 남녀는 동등한 인간존재이고 마땅히 그러하여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한치도 벗어날 생각은 없다.
지난해에는 유난히도 이곳저곳에서 여생문제에 관한 주제토론이 열기를 뿜었다. 남녀는 대등하게 취업의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고 같이 승진되어야하며 동일한 임금·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또 남녀불평등의 기초(?)를 제공하는 친족 상속법등 법규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법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비록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옳소』만을 연발할 뿐이다.
그러나 논란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지위문제가 주로 여성의 바깥 활동폭에 편중되는 느낌을 주어서 가정에 머물며 가정을 일터로 삼는 많은 여성을 위축시키지는 않을까하는 염려와 함께 『주부의 가정업무에 대한 가치평가를 새로이 합시다』라는 주제박표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으냐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순전히 내가 조선파 어머님슬하에서 자란 탓인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다. 이제 유니섹스의 물결이 「여성적」인 것, 「남성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무너 뜨리려는 데도, 나는 생에 의한 차별을 넘어 그 구별마저도 거부하는 일에는 아직은 저항감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내 딸들에게 남자아이돌파 어울려 축구 야구 등의 골목게임을 즐기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다운 미소와 걸음걸이 등을 가르치게 되는데, 가끔은 그들에게서 남녀는 평등한대 어째서 여자는 크게 너털 웃음을 웃으면 안되고 어깨를 흔들며 걸으면 안되느냐는 거센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럴때면 나는 평등이라는 것과 생의 형태를 제거하는 것을 혼동시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면서도 딸 세대의 남녀관이 바로 여기에 이르고 있음을 자각한다.
결국 과학동산 사건은 둘째 딸로 하여금 겨울방학을 과학기술 함양기간으로 매듭짓게 했지만, 나에게는 남녀를 동등하게 하는 보다 적극적인 작업을 위한 어머니로서의 의지를 강하게 해주었다.
하기야 이 갑자년의 장을 열면서 남녀간의 동등만이 생각해볼 문제겠는가. 빈자와 부자, 약ㄹ자와 강자등 평등의 전제 위에서 화합되어야 할 대립계층이 우리사화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것 같다.
김수자 ◇약력 ▲44년 서울출생 ▲작년 이대법대졸업 ▲69년 이대대학원졸업 ▲83년 연대서·법학부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연구위원 ▲이대·명지대출강 ▲저서「자녀교육에 관한 연구」「가등기에 관한 연구」등.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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