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도 외톨이가 아니에요" 청소년위, 빈곤층 '방과후아카데미' 성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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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3시. 서울 S초등학교 4학년 우현(가명.11)이는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책가방을 챙겼다.

인근 중랑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리는 '방과후아카데미'에 가기 위해서다. 부리나케 달려간 아카데미의 첫 수업은 '탱탱볼 만들기'. 파란색의 가루와 액체 플라스틱을 섞은 말랑말랑한 덩어리를 굴리니 어느새 주먹 크기의 공 모양이 만들어졌다. 완성된 공을 바닥에 튀겨 보이는 우현이의 모습이 의기양양했다.

청소년위원회가 9월부터 전국 46개 지역 청소년 시설에 문을 연 방과후아카데미가 저소득층 자녀의 배움터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기초생활대상자(4인 가족 기준으로 월 총소득이 113만6000원 이하) 등의 자녀는 무료로 이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국어와 영어.수학 등에 대한 보충수업은 물론 노래로 영어 배우기, 그림 그리기, 과학실험 등이 주요 수업과목이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현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그의 중요한 오후 일과가 된 것이다.

이전까지 우현이의 오후 일과는 어두운 단칸방에서 엄마가 돌아오는 밤 10시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저녁은 혼자서 찬밥을 날달걀에 비벼 먹거나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청각장애인인 엄마는 아이에게 제때 말과 글을 가르칠 수 없었다. 노점상 일에 지쳐 들어오는 엄마를 괴롭히기만 하던 아빠는 얼마 전 집을 나갔다. 우현이는 "밤만 되면 무서웠지만 집을 비우고 나갈 수도 없었고, 갈 데도 없었다"며 3개월 전의 자신을 "불쌍한 외톨이"라고 표현했다. 우현이는 "요즘에는 옷이 더럽다고 따돌리는 친구도 없고, 밤늦게까지 혼자서 놀 필요도 없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중랑 청소년수련관 임선희(28) 사회복지사는 "우현이는 우릴 선생님이 아니라 이모쯤으로 여긴다"며 "눈 맞추기도 꺼리던 아이가 이젠 재잘거리느라 매일 목이 쉴 정도"라고 말했다.

방과후아카데미는 오후 3시(15시)부터 10시(22시)까지 아이의 일과를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1522 프로젝트'라 불린다. 저녁 식사가 제공되고 전문 상담교사가 일대일 면담을 통해 아이의 개인적인 문제까지 함께 고민한다. 교과 보충학습과 특기적성 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의 '방과후학교'와 비슷하지만 프로그램의 주안점이 '보호'에 있다는 게 특징이다.

청소년위원회는 2009년까지 전국 234개 시.군.구 단위의 모든 청소년 시설로 사업을 확대해 현재 2300여 명인 수혜 학생의 숫자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 시설당 1억5000만원의 소요예산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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