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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계부와 나눔의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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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의 골프 핸디캡은 7. 싱글 골퍼가 된 97년 이후 9년째 이 모임을 거른 적이 없다. 지난 1년 함께 골프를 친 사람 중 내기로 자신에게 돈을 잃은 동반자들을 모은다. 친구는 친구끼리, 직장 동료는 동료끼리. 이런 모임이 5~6개가 된다. 반드시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도록 초청한다.

그는 이 모임에서 적든 많든 내기로 돈을 잃은 동반자와 그 부인에게 저녁 식사와 함께 마음이 담긴 선물을 건넨다. 한 해 동안 함께 라운딩해줘 고맙다는 말과 함께. 부인들에겐 휴일에 남편을 빼앗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깨알같이 정리한 골계부의 수입.지출 명세를 공개한다. 그는 골프로 딴 돈을 '골프 통장'에 넣어 자신이 오랫동안 지원해 오는 불우시설에 해마다 기부해 왔다. 동반자의 스코어와 기억에 남는 홀에 대한 그의 구수한 이야기로 저녁 모임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골프와 경영은 비슷한 점이 많다고들 한다. 골프를 인생과 비교하는 이도 있다. 매번 다른 상황에서 그때그때 빠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골프와 경영은 비슷하다. 해저드.벙커.OB와 같은 난관을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는 점도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기업 경영과 흡사하다. 하지만 기업 경영자들이 골프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이 사장의 골계부 모임처럼 '나눔의 정신'이 아닐까.

국내 골퍼들이 'OECD'(내기에서 돈을 많이 딴 사람이 OB 등을 냈을 때 딴 돈을 다시 내놓는 것)라는 규정을 만들어 내기의 재미를 더하는 것도 이런 연유이리라.

아무리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도 그것을 혼자 힘만으로 이루진 못한다. 부품을 대는 많은 협력업체의 협조와 그 회사 제품을 사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우군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고객은 물론 주주.임직원, 나아가 사회를 향해 베풀 줄 알아야 진정으로 '강한 기업'이 된다. 이해관계자의 눈물을 딛고 선 기업은 어느 날 외면당할 수도 있다.

"경영자들은 회사 주주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것 이상의 책임이 있다. 종업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줄 책임과 그들이 노동의 결과로 얻은 성공을 같이 나눠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할 책임도 있다. 나아가 고객에 대한, 즉 사회에 대한 책임도 있다." 휼렛패커드의 공동 창립자인 데이비드 패커드의 말이다.

제 아무리 골프를 잘 쳐도 동반자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골프를 잘 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잘 치는 사람이 빛나는 법이다. 혼자 라운딩하면서 버디 10개를 낚은들 무슨 소용이랴? 손뼉 치는 사람이 없는데…. 숲으로 들어간 동반자의 공을 함께 찾아주고, 필드에서 원 포인트 레슨도 하면서 라운딩하는 싱글 골퍼는 존경받는다. 하청업체나 협력업체를 배려하는 대기업이 존경받는 것처럼.

싱글 골퍼들이여, 내년 봄에 잔디 새싹이 돋거든 골계부를 한번 만들어 보시라. 그러곤 연말에 베풀어 보시라. 많은 동반자가 멋진 샷보다는 나눔의 정을 더 우러러 보리라.

김동섭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