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도둑' 이상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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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팅은 타이밍이다. 피칭은 타자의 타이밍을 뒤흔드는 것이다.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워런 스팬의 말이다. 애틀랜타 브레이스의 전신인 보스턴.밀워키 브레이브스에서 주로 뛰었던 스팬은 1942년에 데뷔, 65년 은퇴할 때까지 개인통산 3백63승을 거둔 명투수다. 그런 그도 타자를 윽박질러 꼼짝 못하게 만드는 투구보다는 타이밍을 뺏는 지능적인 투구를 최고로 꼽았다. 투구의 미학은 수(手)싸움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요즘 한화의 선발투수 이상목(32.사진)의 투구는 수읽기 교본으로 불릴 정도다. 20일 현재 이상목의 방어율은 1.37로 이 부문 1위다. 9이닝을 완투했을 때 한점 정도를 내준다는 뜻이다. 6승1패로 다승 공동 2위에 올라 있는 성적이 오히려 불만일 정도다. 한화의 간판투수로 불리는 송진우(2승5패, 4.36).정민철(4승2패, 3.45)보다 승수나 방어율에서 모두 앞서 있다.

그의 주무기는 바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변화구다. 그 중 첫 손가락에 꼽는 변화구가 포크볼이다. 검지와 중지를 포크처럼 벌려 공을 찍듯이 잡는다는 포크볼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 대신 제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상목은 긴 손가락을 이용해 포크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KBS 장건희 해설위원은 "제구력까지 갖춘 이상목의 포크볼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다 겨우내 새로운 변화구도 개발했다. 슬라이더.체인지업.싱커 등 각종 변화구를 장착, 이상목을 상대하는 타자의 머리 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지난 16일 사직 롯데전에서 완봉승을 챙긴 이상목은 모두 1백6개의 투구 중 싱커(26개).슬라이더(20개).체인지업(15개)을 주로 던졌다. 자신의 주무기를 직구와 포크볼로 예측하고 들어오는 타자의 허를 찌른 역습이었다.

90년 삼성에 고졸 신인으로 입단한 이상목은 올해로 벌써 프로 14년차다. 군 시절과 2000년 어깨수술로 쉬었던 기간을 빼면 그도 올시즌 이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부상의 터널을 빠져나와 부활의 날개를 펼친 이상목에게 힘이 솟는 또다른 이유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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