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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 짓궂고 유머러스한 브리짓, 나와 닮았다 영화 ‘파리 폴리’ 이자벨 위페르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란 수식이 붙는 이자벨 위페르(62)는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친숙하다. ‘피아니스트’(2001, 미카엘 하네케 감독)처럼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뿐 아니라 ‘다른나라에서’(2012, 홍상수 감독)로 한국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는 신작 ‘파리 폴리’(원제 La Ritournelle, 2월 26일 개봉, 마크 피투시 감독)에서 시골 목장의 평범한 안주인 브리짓을 연기한다. 피부병 치료를 핑계 삼아 사흘간 파리를 여행하며 남편 자비에(장 피에르 다루생) 몰래 두 명의 남자와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벌이는, 귀엽고 당돌한 중년 여성이다. 이자벨 위페르는 magazine M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를 봤는데 무척 좋았다”며 한국영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사진 영화 `파리 폴리` 스틸컷]

-‘파리 폴리’ 촬영 이후 어떻게 지냈나. “매우 잘 지내고 있다(웃음). 촬영이 끝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일을 했다. 영화란 게 그렇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파리 폴리’는 전작 ‘코파카바나’(2010) 이후 마크 피투시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인데. “그는 현존하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감독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는 우아하되 무겁지 않고, 코믹한 상황 속에 쓸쓸함을 건드리는 통찰력이 있다. 늘 정확한 박자와 리듬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미국 코미디영화의 황금기가 어땠는지 잘은 모르지만, ‘마이 페어 레이디’(1964)를 연출한 조지 큐커(1899~1983) 감독이나 ‘멋진 인생’(1946)을 만든 프랭크 카프라(1897~1991) 감독과 같은 반열에 든다고 생각한다. 늘 유쾌한 자세로 현장에 임하면서도 작은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세심하다.”

-브리짓은 남편 자비에를 사랑하면서도, 남편 몰래 매력적인 두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사흘간의 파리 여행을 만끽한다. 브리짓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했나. “어떤 역을 맡든 그 역할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배우로서의 연기, 실제 내 자신의 모습, 상상과 소망이 함께 섞여 나와 역할 사이에 일종의 케미스트리가 일어나는 거다. 브리짓은 짓궂고 유머러스하다는 점이 나와 많이 닮았다. 관객이 영화 속에서 호감을 느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게 늘 쉬운 것만은 아니다. 자칫하면 밋밋하고 지루해질 수 있으니까. 배우로서는 까다롭고 복잡하며 모순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게 더 흥미롭다. 그런 면에서 브리짓은 모순적인 인물까진 아니지만, 꽤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그의 짓궂은 면을 더 강조하려 했다.”

-브리짓은 평범한 시골 여성이지만, 어떤 면에서 전작 ‘코파카바나’에서 당신이 연기했던 자유분방한 싱글맘 바부를 연상하게 한다. 두 인물 모두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일상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그렇다. “피투시 감독이 여자의 심리에 관심이 많다. 다음 영화도 여성에 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늘 평범하고 수수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브리짓은 바부에 비하면 판에 박힌 생활을 하고 있지만, 파리로 떠나면서 금기를 깨고 자신의 욕망을 좇기로 결심한다. 흥미로운 건 브리짓에게 죄책감이 없다는 점이다. 자비에 역시 몰래 아내의 외도를 지켜보며 남편으로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브리짓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부부 관계를 변화시킨다. 남편에게 거창한 설교를 하는 게 아닌, 표 나지 않게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브리짓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청년 스탠(피오 마르마이)과 중년 남성 제스퍼(미카엘 니크비스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관계가 깊어질 때면 그들로부터 도망친다. 그 널뛰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했나.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에 남편이 바람을 피웠던 것처럼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을 떠날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거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좇아 모험한 것일 뿐이다.”

-브리짓과 남편 자비에가 각각 파리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도시 곳곳의 여러 명소가 담겼다. “콩코드 광장, 바토 무슈 유람선 등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리는 파리의 관광 명소가 등장한다. 실제로 한 번도 파리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브리짓 역시 파리에 온 적이 있지만 아주 가끔이었을 거다. 그래서 관광 엽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장소에 가보는 것이다.”

-‘코파카바나’에서 함께 모녀로 출연했던 당신의 딸 롤리타 샤마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재능이 많은 아이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힘도 뛰어나고 특히 코미디 연기에 강하다. 최근에는 멋진 영화에도 출연했다. ‘게이비 베이비 돌(원제 Gaby Baby Doll, 2014, 소피 르토어뉴 감독)’이라는 프랑스 영화로, 혼자서는 못 사는 여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남자를 만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롤리타가 거기서 놀랄 만한 연기를 펼쳤다. 소피 르토어뉴 감독은 프랑스의 젊은 시네아스트 중 가장 한국적이라는 평도 있으니, 한국에서도 꼭 개봉했으면 좋겠다. 영화의 시적인 느낌이 홍상수 감독의 작품과 닮았다.”

-10대 시절 데뷔해 50년 가까이 연기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껏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덕목은 무엇인가. “인내심이다. 대부분의 영화 현장은 인내를 시험하는 곳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실패를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영화배우는 화려한 직업이고 늘 빛나는 부분만 보여주게 된다. 수면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부만 말이다. 빙산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니까 빙산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웃음). 빛나는 걸 보여주면서 빛나지 않는 건 보여주지 않는 곳이니만큼 인내심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당신이 몰두하고 있는 일은 뭔가. “폴 버호벤 감독와 함께 영화 ‘엘르(원제 Elle)’를 찍고 있다. 그가 파리에서 촬영하는 첫 번째 영화로, 필립 지앙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모든 장면에 내가 등장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 모험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더 깊고 섬세하게 연기할 수 있는 감정이 있나. “글쎄. 난 늘 깊고 세밀하게 표현해 왔다고 자부한다(웃음). 내 이름을 알렸던 초기 역할을 보면 고통스럽고, 깊고, 세밀하게 연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연기해온 거다. 물론 인생의 각 시기에 맞는 역할이 있겠지만, 연기의 방식이 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대신 연기할 때는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 악기를 연주할 때 밀폐된 공간이 필요한 것과 같다. 배우라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관할 필요가 있다. 통제와 방만이라는, 이중적 자세가 필요한 존재가 바로 배우다.”

-한국영화에서 당신을 다시 만날 기회는 없을까. “나 역시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홍상수 감독과도 다시 작업하고 싶고, ‘설국열차’가 무척 좋았기에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도 출연하고 싶다. 김기덕 감독을 비롯해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영화감독이 무척 많다. 한국영화는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저력이 있기에 프랑스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글=고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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