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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마무리는 단절과 지속의 선택의 중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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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단절과 지속의 두가지를 어떻게 결정짓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필요없는 것은 단절시키고 필요한 것은 지속하는 개인의 선택이 바로 마무리의 미학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단절할 것은 고통이 따르더라도 단호히 끊어버리고 끊은 자리를 재빨리 다른 것으로 채우지 말고 비워두는 공간의 미학도 좋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마무리는 반드시 끝맺음이 아니라하던 일의 철저한 이어짐이 건실할때 좋은 시작이 연결되고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는 마무리의 한 지속으로 산행을 나선다. 새벽등산을 계속하는데는 얼마간의 집념과 인내가 필요했다. 어수선한 망상과 혼잡한 꿈의 조각을 건너서 겨우 단잠에 빠진 새벽 다섯시에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선다는 것은 아무래도 다부진 결의를 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한시간의 단잠과 능히 바꾸어도 좋을 대장관을 10분쯤후에 만나게된다.
적당하게 가파른 오솔길이 겨울나무사이를 꿈길처럼 열어놓고 세밑에는 눈까지 내려 산은 푸근한 손짓과 적요한 안을 느끼게 해준다.
과잉문화시류에서 겉과 안의 문화를 구별못한 우리들의 실수도 거기서 느끼게 되는 것도 상쾌한 일이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은 가까이 있었다. 매연이 없는 공간은 카랑카랑 서걱이는 새비단소리를 내는듯 맑고 투명했다. 별이 저처럼 빛나던 것인가. 새삼 어린날 기억까지 더듬게 해 주는 상쾌함을 거푸 맑은 공기와 함께 한잔의 약수도 벌컥벌컥 공복을 깨우며 마시게 된다. 그래, 이런 것이다. 사는 의미란 그렇게 대단한 것에만 있는 것이겠는가. 한 개인의 정신적 노선과 행동이 일치하며 그것으로 만족을 얻을 때 사는 의미란 대단한 것으로도 확대되리라고 산을 내려오며 생각하게 된다.
세계는 헤아릴 수 없는 길을 가졌고 한나라 또한 같으며, 한 개인도 알게 모르게 마음안에 노선을 갖고 있다. 나의 새벽등산은 그 하나의 노선이요, 나는 그노선의 왕래로 나의 삶을 가까이 보게되는 계기를 갖는다.
한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한해를 맞는 관절의 시간에 우리는 서 있다.
결국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도와줄수 없는 삶을 자신만이 가꾸며 만들어가듯 시간 또한 무엇 때문에 어느 매듭이 더욱 소중할 수가 없으리라.
한해를 보낼 때마다 타성적으로 마무리의 미학이나 끝의 화합을 강조하게된다. 또 새해에는 뭐 대단한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성취감의 기대감을 말하게 되지만 역시 그런 심리는 복잡한 현대의식이 종용하는 일종의 피해의식은 아닐까. 무겁게 우리를 누르는 탐욕, 덕지덕지 바르고 또 바르는 허위, 자기와 위선을 분리할수 없이 자기가 되어버린 슬픈 현장, 그런 것은 강건너 물이 아니므로 바로 내가 선사회며 내 치마 끝에 불은 불이므로 더욱 다가오는 시간에 예민한 기대감으로 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시대를 이해하는 시대적 인간이 된다는 것. 반드시 참여가 아니라도 될 것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더라도 확실한 믿음과 즐거움을 갖고 행동할 수있다면 자기로부터 당당한 한 시대인의 긍지를 갖게될 것이다. 그러한 소시민적 기쁨이 홀로 걸어가는 적요한 정신의 사색에서 출발되는 것을 나의 새벽등산은 잘 가르쳐 주고 있었다.
산은 언제나 다른 포즈로 서있고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의 통일된 동일성을 갖고있었다. 다른 것과 다른 것의 통일된 동일성 이것이 새해에는 모든 문화전반에 이루어져야할 과제는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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