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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씨름은 많았어도「명언」은 귀했던 한해 말로 본 83년의 정치|「통곡의 바다」…「장명동 사건」…「괴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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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가 곧「말」이라는 말처럼 정가의 한해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 연초의 각당 전당대회에서부터 연말의 선거무드에 이르기까지 올해따라 말은 유난히 많았지만 허다했던 대사건들에 비해 오래 기억될 명언이나 뛰어난 말은 적었던것 같다. 말을 따라 83년의 정치를 이모저모 살펴본다.
○…83년의 정가는 여야간의 설전으로부터 시작됐다.
1월에 있은 지구당개편대회를 통해 각당은 정당의 균형발전 논쟁을 벌인 것.
『여당 바퀴만 크고 야당 바퀴가 작으면 기차는 넘어진다』『여당은 빌딩을 지으면서 야당은 판자집도 못짓게 한다』(신상우 민한당 부총재)는 투의 공격이 야당으로부터 잇달아 나왔다.
에 민정당은『농사도 안짓고 남의 농사짓는데 왈가왈가 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이재천 민정당 대표의원)『우리가 개미처럼 일할 때 그들은 매미처럼 노래나 불렀다』(이종찬 민정당 총무)고 응수.
용광로에 안녹는쇠
이어 있었던 당직개편 과정에서 자신의 퇴진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민정당의 이재천 대표위원은 3월21일 사임을 발표하면서『민정당 당직자들은 뉴스제공자·편집인·평론가·독자를 동시에 겸하고있다』며 쌓였던 불쾌감을 토로.
그는 또 퇴임사에서『여당을 민주정당으로 이끄는 것이 야당때보다 훨씬 어려웠다』며『그동안 우리는 민정당사를 병영의 색깔로 칠하게 될 수도 있었으나 민주의 색깔로 칠하는 어려운 작업을 해왔으며 잘못하면 퇴색하기 쉬운 작업을 해왔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당직개편이 끝난 후 열린 의원세미나에서 권익현 사무총장은『당의 운영이 느슨해지면 곧 백화제방이 되고 약간 긴장하면 일체 표현이 없는 침묵의 바다가 된다』고 당분위기를 개탄.
권총장은『제5공화국의 큰용광로에 녹지 않은 쇠가 아직도 있다면 그쇠는 쓸모 없으며 어떤 파벌이나 계보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4월1일)
○…1월18일 전두환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해금방침을 밝힌 후부터 해금은 연중 계속되는 정치이슈가 되었다.
유치송 민한당총재는 연두회견(1월22일·광주)에서『과거 한솥밥을 먹던 식구였던 피규제자들이 풀리면, 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며 이들을 영입해 제1야당의 진용을 한층 강화시켜나가겠다』고 했고,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은『민정당도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표명.

<"내년가서 내년에…">
2·25해금 후 기회있을 때마다 2차 해금설이 나돌아 제헌절, 8·15, IPU총회전,「레이건」방한전후등 설이 분분했으나 끝내 내년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6월 임시국회에서 민한당이 추가해금건의안을 낼 움직임을 보이자 민정당은『점심을 대접하고 저녁 먹으러 오라고 했더니 저녁도 되기전에 저녁을 줄것인지 사인하라고 하는격』(권사무총장 6월14일)이라고 일축.
해금과 궤를 같이한 조기총선설과 민정당의 괴문서사건도 금년 정계의 화제거리였다.
7월부터 재야 여·야당을 왔다갔다하며 근거있는 설로 자리를 잡았던 조기총선설은 12월에와 권민정 사무총장이『선거는 지금 내년(84년)에 한다는 것 보다는 내년에 가서 내년(85년)에 한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것』이라고 해 꼬리를 감추었다.
괴문서에 관해서는 김용태대변인이『그 명단은 불온문서 또는 괴문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해 처음으로 괴문서란 이름이 정착(?)됐는데 당간부들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 적지 않은 파문을 초래.
『출처를 밝히라』는 해당의원들의 압력에『황당무계한 문서의 출처는 무시하자』는 당직자들의 설득이 되풀이된 꼴에 괴문서는 일단「낙서」로 단락이 졌지만 파장은 쉬이 가시지 않은 상태.
항간에 한때 개헌설도 나돌았지만 전대통령이 6월1일 평통자문회의에서『북한공산집단의 끈질긴 흑색선전책력이 작용해서 빚어진것』이라며『도대체 개헌을 추진한 사실도, 추진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라고 말해 가라앉았다.

<"이냐 의의 시대냐">
○…4월 임시국회중 터진 대도 조세형탈주사건은 정가에서도 많은 말을 낳았다.
박완규의원(민한)은 대정부질문(4월19일)에서『세간에는 3대 불가사의가 나돌고 있는데 첫째는 개헌설이요, 둘째는 삼보증권 의혹사건, 세째는 대도탈주의혹사건』이라며『고관집에서 수억대의 금품이 쏟아져 나오니 지금이 이의 시대냐, 의의 시대냐』고 힐난.
『대도에게 당한 사람을 동정하기 보다 쾌감을 느끼는 현상은 우리사회의 병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반증한다』(허경구·민한)『서부활극에서도 등뒤에서 총을 안쏘는데 독안의 쥐격인 조에게 총기를 사용한 것이 정당했나』(박병일·민한)는등 발언이 속출.
이에대해 배명인 법무장관은『도둑을 신성한 국회에서까지 거론하니 세상모를 일』이라고 개탄했고 이진희 문공장관은『도둑맞은 쪽에 이중의 피해를 준다면 우리의 이념체제에 심각성을 띠게된다』며『언론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언론에 화살.
○…상당기간「정치현안」「최근의 문제」「관심사」등으로 보도되었던 김영삼씨 단식사건은 민한당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6월9일 김씨가 단식을 끝내고 하루 뒤 열린 민한당의원총회는 야당의 존재논리에 회의와 자조를 제기.
『묶여있는 사람은 할말을 다했는데 우리도 이제 할말을 하자』(고재청)『지난 2년간 정국 안정이라는 이름아래 침묵과 협조를 해야했으나 이제 툭툭『털고 본연의 자세를 찾자』(강원채)『우리당 간부들이 단식은 못할망정 말리러 간것은 잘못이다. 민한당은 현 체제에 가진것 다 바치고, 달라는것 다 주고 얻은 것이 뭐냐』(허경구) .
이「장외정치」의 영향으로 민한당은 이렇다할 명분없이 6월 임시국회를 자동유화시키는 기록을 남겼다.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 못한 언론상황에도 말이 많았다.

<"들풍년·마당흉년">
『반달곰의 죽음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단식은 한줄도 보도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김병오·민한)는 식의 국회발언이 속출.
심지어 민정당의 이한동의원까지『보도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유언비어에 현혹되고』라고
지적
그러나 이진희 문공장관은『책임언론을 지향하고있는 언론이 보도에 있어 매우 신중했던 것같다』고 책임을 언론에 전전
이 사건을 계기로 여야는 모두 장외정치의「장내수렴필요성」을 역설.
○…정부 여당은 6월30일 내년도 동결예산을 확정한데 이어 대학졸업자 초임동결(10월21일), 보리수매가동결, 추곡수매가 동결등 이른바「동결시대」를 전개.
그러나 연말의 철도·택시요금인상으로 야당측으로부터『동결지상주의에 역행』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김종철 국민당총재는『정치마저 동결하면 큰일난다』고 언중유골로 비판.
정부는 9월 올해를 대풍이라고 발표했으나 야당측은 논에서 보기 다르고 탈곡할 때 또 다르다하여『늘 풍년에 마당흉년』이라고 주장.
정부의 물가안정시책에 대해서는『국민들만 가시밭길로 가라는식』(조덕현·국민)이라는 지적에서부터『물가가 반자리숫자로 멈추었는데도 아파트투기가 일어나는 것이 민정당의 통치냐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다』(이재찬 민정대표위원)는 등 다양한 비판.

<"금융부정 금메달">
○…명성·영동진흥개발의 대규모금융부정사건은 작년의 장영자사건과 결부시켜「장명동사건」(이성수·국민)이란 신조어를 창출.
『올림픽에 금융부정종목이 있으면 당연히 금메달감』(한광옥·민한)이란 야당의 힐난에 대해 진의종 민정당대표위원은『과거 잘못의 누적』(9월28일·핵심당원 연수회)이라고 했고 강경식 재무장관은『과도기의 시련』이라고 빠져나갔다.
민한당의 유치송총재등이 사고기업이 모두 신흥기업인 점을 지적,『정부여당은 무얼했길래 구시대책임론만 들고나오느냐』고 꼬집자 정석모 민정당정책위의장은『은행민영화 과정의 불상사』라고 둘러댔다.
IPU총회를 앞두고 야당이 이 사고를 따질 재무위소집을 요구하자 권익현 민정사무총장은『집안싸움도 손님이 오면 그만두는게 동양의 예의』라고 응수했는데 다시 버마참사가 터져 예봉을 회피.
그러나 정기국회에선 의원들의 기업성토가 무성했고 특히 현대건설의 기업공개 문제를 놓고 여·야 의원들은『현대는 우리 국권이 안미치는 곳이냐』고 힐난. 각종 기업비리의 폭로가 잇달자 이종찬 민정총무는『국회가 대기업들간의 상호투서전의 인형노릇을 한다』고 개탄.

<"총리는 동네북">
○…KAL기격추와 버마참사는 미증유의 좌절감과 비극을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다.
온세계가「집단살육」「대량공중학살」로 표현한 KAL기 사건을 놓고 국회외무위는『슈퍼 파워를 가진 무뢰한이 어린애를 마구 구타한 격』(봉두완위원장)이라고 비난했고 박근 ICAO대표는『맹수에 사냥된 먹이』로 비유. 유족들이 조화를 던진 왓까나이 바다는「통곡의 바다」로 명명.
버마사건이 터지자 전두환대통령은『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도발행위』로 규정하고『이번이 우리가 감내할수있는 최후의 인내』(10월20일·특별담화)라고 경고.
○…『굽은데는 펴고, 막힌데는 뚫겠다』는 말과 함께 등장한 김상협 국무총리는『총리는 원래 동네북이 아니냐』는 말을 남기고 퇴진.
이어「착실내각을 자처」하고 출범한 진의종총리는 민정당 대표시절의 대평성대론으로 한때 국회에서 고전.
야당의원들은『대형사고가 잇달아 나는 시국을 과연 태평성대라고 할수있느냐』고 추궁했기 때문.
김준성 부총리와 노태우내무가 물러나고 서석준·주영복씨가 등장한 76개각을 두고 야당의원들은『마운드에서 강판시킨 선수를 한 이닝만에 다시 불러들인 꼴』이라고 촌평.
10·14개각으로 최장수장관을 마감한 이규호 문교장관은『조금만하고 그만두려 했으나 시간에 쫓겨 일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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