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성인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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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필자가 항상 서양사람들에게서 꼭좀 본받았으면 하는 점은 물건을 사든지, 사람을 사귀든지 하는 점에서 매우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찾기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시계는 뭐, 넥타이는 무슨표등 세계 최고급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쓸것인지에 맞추어 선택하는 사고가 습관화되어있다
올림픽을 주최한다는 우리는 이런점에서 아직도 더구나 허례를 중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이러한 좋지않은 의식이 의료에도 나타나서 환자들이 유명하고 고명한 곳만 찾아다니는 경향이 생겨났다. 예를들면 『우리 아기는 아무개 병원에서 분만했고, 아무개 박사에게 진찰을 받는다』는등 이른바 일류병원·일류의사의 환자라고 허세를 부리는 어떻게보면 가련하다고할 사람들을 자주 볼수있다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이 의사의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라는 내용으로 연구한 결과 크게 두가지 요소가 의사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첫째는 신뢰성, 둘째는 전문성이다
필자는 용인·광주·서울에서 조사한 연구결과도 역시 의사에게는 신뢰성이 제일 중요한것 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여기서 신뢰성이라 의사의 인간됨됨이, 즉 인간으로서의 평가를 의미하고, 전문성이란 실력, 즉 얼마나 공부했느냐를 의미한다.
박사·전문의등 겉에 보이는 타이틀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의학이란 학문은 발전하면 할수록 신뢰성보다는 전문성을 더 요청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인간성 자체를 잃기 쉬운 경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의학분야에서 의료의 인간화, 즉 신뢰성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의사를 양성하여야 겠다는 생각 끝에 소위 가정의학이라는 의학의 한 전문분야를 만들었다. 가정의학은 한가족에게 생기는 의학적 문제들에 대해 질병의 종류·연령·성별에 관계없이 한가족의 일원으로서 마음속 깊이 인간관계를 맺고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전문분야를 말한다. 한국에서도 시작된 가정의가 과연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앞으로의 큰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의사와 환자사이에 신뢰성이 생기지 않으면 병은 잘낫지 않는다. 무슨 약을 지어가도 『이것이 정말 내병에 좋은 것인가』를 의심하면 결국 약복용이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래서 환자는 다시 더 용하다는 병원을 찾게되고 결과는 마찬가지여서 요즘, 흔히 말하는 「병원순회환자」를 만들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유명하다는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계속 마음의 병만 깊어질뿐 치료는 되지않는다. 이제는 의료에서의 허영과 허구를 떨쳐버리고 가장 실용적인 의료가 요구되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환자와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의료인과 그 의사가 낫는다고 했으니 나는 꼭 회복될수 있다는 환자의 신뢰에서 현대의 많은 병은 큰돈을 들이지않고도 치료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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