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종 조계종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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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흥사 승려살인사건으로 다시 야기된 불교분규가 해결을 못보는 사이에 어느덧 부지하세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승려들이 사찰의 주지직들 둘러싸고 집단 편싸움을 벌인끝에 살인까지 저질렀을 때에는 그저 아연하여 할말을 잊었던 사람들이 그후에 전개된 불교교조종단의 사건처리·수습과정을 보면서는 의아와 담담함을 함께 느꼈던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그러나 최근 집달리를 앞세운 새집행부가 담장을 허물고 총무원에 들어가는가하면 다음날에는 또 그나마 출입을 못하게되고 새집행부가 전총무원장을 상대로 총무원장 선임결의유효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는 조자종사태의 혼미와 난맥에 망연하면서도 일종의 분노감조차 표출하게 되었다.
도대체 불교인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저토록 사태를 벌여놓고도 수습할줄을 모르고 끈질긴 이권싸움으로 세월만 보내는것일까.
종단안의 문제를 종단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것도 이해할수 없거니와 한번 재판으로 승패와 정부가 판가름난 뒤에도 어쩌면 세속사람들보다 더 권력에 짐착하여 쟁송을 되풀이하는가 하는 답답한 마음에서다.
지 금 시작한 재판은 대법원까지 올라가야 결말이 날터이니 부지하세월의 다툼이 될것도 분명해졌다.
불교조계종의 몰골을 저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다시 재판싸움으로 세월을 보낼셈이니 한심한 느낌이다.
과연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보면 그같은 싸움은 무시무종의 윤회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아상과 이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집착의 고를 끊고 영원한 해탈을 이룩하자는것이 불교의 근본정신이라고 할때 불교인들의 저같은 싸움은 가장 비불교적 싸움의 모습이 분명하다.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하였던 탈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을 스님들은 도무지 염두에도 없는것같다.
그들은 마치 오탁 악세의 주인공들처럼 사회악에 철저히 물들어 오히려 속인들을 무색하게 한다.
그들은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를 대표할수도 없고 조계종단 승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기능과 종무행정상 책임을 둘러싼 분규의 핵심인물들이니만큼 사회적 영향은 결코 적다고 할수 없다.
그들의 말썽은 그들 자신의 이권에 직결된것이지만 그보다는 불교와 종단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중요한것이다.
그들의 분규는 자신들의 불행은 말할것도없고 불타의 교법자체에 누를 끼치지며 나아가 불교를 포함한 종교 일반에 대한 사회의 불신과 조소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조계종의 분규를 하루 빨리 해소하는것은 불교를위해서건 종단을 위해서건 우리사회를 위해서 절실한 과제가 되고있다.
때문에 우선 분규의 당사자들이 그점을 인식하고 불교의 근본정신에 돌아가는 일이 가장 시급한것 같다. 싸움의 연유를 다시 캐기에 앞서, 그들이 불타의 가르침에 따라 상구보제 하화중생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수도인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겠다.
비구는 반드시 열반할 결심으로 수도에 매진하여 마군을 두렵게하는 포*요 밥을 빌어먹지만 부처님의 법을 빌어 지혜를 닦는 걸사가 아닌가.
청청한 계율을 지키며 깨끗한 생활을 하는 파악의 사람이 오덕을 갖춘 비구임을 스스로 자각해야겠다.
그들의 본분이 그렇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런데 하물며 본분과 교법을 어기고 어찌 감히 불자임을 내세울수 있을까.
그런 정신에서 분규의 당사자들이 대오일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버리고 물러서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한번 물러서면 타협과 화해의 길도 열린다. 설득과 협상의 마당이 애당초 성립하지 못하는 종단이라면 그것은 원효이래로 화쟁을 제1의로 하였던 한국불교의 정신과 화쟁종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광복이후 출범했던 조계종단의 존재의미를 아주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타협과 대화는 지금 가장 중요한 해결의 열쇠다.
그럴때 세속법의 쟁송으로 지지부진한 싸움도 씻을수 있고 불교에 덮쳐오는 오비도 벗을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해결은 불교의 몇몇 당사자만의 일은 아니다.
2만의 해단 특히 중견·원로들이 사태를 그저 방관하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털어버리고 종단정화에 적극 뛰어들 필요가 있다.
몇사람의 해포가 종단과 불교자체를 오손시키는 마당에 다만 안주하고 있을수도 없겠다. 파사현정과 정법수호가 정말 지금 필요하다면 승단이 적극 개입하여 문제를 빨리 해소하는것이 참된 지혜이겠다.
그러나 그때 종단사태 수습은 타력에 의한 독선이나 폭력을 배제함으로써 불교와 종단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 정도이겠다.
1천6백년의 한국불교 전통을 오늘에 계승 발전시키는것은 오로지 지금 조계종사태를 지혜롭게 극복하는데 달려있음을 1천3백만 불자들이 깨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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