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어긋나 큰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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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총선 결과의 윤곽이 드러난 19일 정오 백악관 브리핑실에서는 한 미국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일본에서는 「레이건」의 옷자락을 잡는 효과가 어느 정도 났다고 보는가?』
그것은 냉소 섞인 질문이었다. 겨우 한달 전 「레이건」미 대통령이 동경을 방문하고 「나까소네」일본수상을 밀어줬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았느냐는 힐난이 그 질문에는 함축되어 있었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고 짤막하게 논평하고 자나갔다.
그러나 「레이건」행정부가「나까소네」내각에 걸어온 기대에 비추어 볼 때 실망은 대단할 것 같다. 「레이건」 행정부의 아시아정책은 70년대이래 미국행정부의 중공중시에서 뚜렷이 벗어나 일본중시로 되돌아섰다.
그런 정책상의 새로운 좌표 안에서 미국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에 대해 원대한 시나리오를 마련해놓고 「나까소네」수상을 통해 이를 실현시켜 보려 노력해왔다.
우선 잘하면 84년부터 일본국민이 터부시해온 국민총생산고(GNP)의 1%미만이라는 군비의 상한선을 무너뜨리고, 장기적으로 3대 해협봉쇄와 l천마일 해상통로 방위를 일본이 떠맡게 되면 미국은 동북아의 군사력을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이 세부 시나리오였다.
그런 시나리오에「나까소네」수상은 역대 어느 일본수상 보다도 적극적인 호응을 보였다. 「레이건」대통령이 동경에서 통상관계에 관한 불만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일본의 방위분담문제도 거의 거론하지 않은 채 「나까소네」수상과의 개인친분을 크게 과시한 것은 미국 입장에 호의적인 「나까소네」의 선거를 의식해서였다.
만약 자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확고한 세력기반을 구축했었다면 「레이건」대통령 스스로도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공세의 예봉을 막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본 총선전까지 워싱턴의 일반적 관측이었다.
「나까소네」수상이 내년 봄쯤 미국제 쇠고기와 오린지 등 논란 많은 농산물에 대해 수입을 자유화하고 국방예산을 약간 증가시켰을 경우 「레이건」대통령은 자신의 동경설득으로 그런 성과가 나왔다는 말로 민주당 쪽의 보호주의를 막고 『일본이 공차를 탄다』는 비난도 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일본 총선 결과로 봐서 그런 계산은 이제 백일몽이 되었다. 「나까소네」가 계속 집권하든 또는 다른 누가 수상직을 맡게 되든 간에 이번 선거 결과로 봐서 「나까소네」가 미국에 약속한 정책들을 그대로 밀고 나가기 어려우리라는 것이 워싱턴언론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로 미일의 협조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미국이 일본에 대해 아시아의 방위분담을 요구할 때 그 배경에는 늘 통상관계에서 일본이 누리고 있는 거의 2백억달러에 달하는 대미무역흑자가 작용했었다. 그것은 미국 측으로서는 경제대국이 된 일본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지렛대다.
이 지렛대가 계속 건재하는 한 일본이 방위분담을 거부하기는 어렵게 되어있다.
따라서 「나까소네」의 좌절이 당장은 「레이건」행정부에 어려움을 안겨줄지 모르지만 미일관계의 기본 방향은 변화 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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