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인식의 차이는 여전"격랑"회피엔 성공|막내린 정기국회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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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도 정기국회가 16일 폐회됐다. 이번 정기국회는 차기선거를 의식한 야당의 정치공세,잇단 대형금융사고 등으로 다소 파고가 높을 소지를 내포하고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여야격돌이나 파항없이 「조용한 국회」로 끝난 셈이다.
정기국회가 이처럼 조용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것은 IPU 등으로 실질회기가 단축되어 여야 모두가 시간에 쫓긴탓도 있었지만 KAL기사건·버마참사등 국가적 환잡의 위급한 상황이 「소리의 한계」를 저절로 부각시킨 탓도 있고 지난 3년간 부딪쳐 조립되어 온 여야관계의 틀이 나름대로 정형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회를 두고 여당은 새 국회상이·정립되었다는 주강의 근거를 다졌고 야당은 주장의 추급노력 보다는 힘의 한계와 국가적 상황에 조화를 이룬 협조와 공존의 둘을 체득했다는 말을 듣게됐다.
그러나 이번 국회의 대정부질문·답변과 예산안 및 정치쟁점의 처리과정을 돌이켜보면 여야의 자평과 일반국민의 느낌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폭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여야는 대정부질문에서 드러낸 엄청난 현실인식의 차이를 국회토론 과정에서 얼마나 조정·접근시켰는가의 물음이다.
야당은 대형사고와 비극적사건들로 인한 난국이 모두 제5공화국들어 야기된 정치적·사회적 병리현상과 모순때문에 생긴 것 이라고 진단하고 난국극복의 처방으로 각종 선거법개정·지자제실시·언론기본법 개정등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여당은 일련의 불상사가 『국혼개척의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도전』이며 이를 보와위폭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 기왕의 진노를 수정할 어떤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여야 모두 상극의 주장을 되풀이 했을 뿐 어느쪽의 현실진단이 옳았는지, 누구의 처방이 효과적이었는지 등에 관한 진지한 토론은 상임위·예결위를 통틀어 홉족했다고 볼 수없다.
다시말해 많은 문제를 제기만하고 방치한 셈이며 그런 문제들에 대한 국정소화와 이견조정은 계속 과제로 남겨둠으로써 국회가 민심수습에 앞장서고 중추적 역할을 했느냐에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다고 정부의 결연한 자세가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밝혀진 것도 별로 없었다.
특히 금년부터 처음 실시된 상임위예산안예비심사와 예산안처리에서 보인 여야의 자세는내실도 없었고 논리의 일관성도 잃었다.
세출예산동결과 세입예산의 흑자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과정을 보면 여당이 얼마나 쉽사리 경직성에 빠지는가를 보여준 예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야당은 국민의 세부담을 줄인다는 세입삭감노력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체면치레의 인상이 짙은 반대의 방법과 명분에 구차하게 연연, 국민평에서는 무슨 노력을 했는지 분간하기 어렵게 했다.
물론 이번 정기국회가 탐탁지 않은 활동으로 일관한 것 만은 아니다. 국회법개정·독립공채보상·농수축협단위조합장임명제도개선·고문방지조항을 삽입한 특가법개정은 눈에 띄는 소출이고 그 성사과정은 평가할만한 대목이다.
국회법개정은 여야에 다같이 명분과 실리를 안겨주었다. 민정당이 개혁입법에는 손 못댄다는 종래의 형식논리를 벗어나 상임위예산심의권부활에 동의한 것이나 야당이 발전적 대안을 끈기있게 재시, 설득한 것은 앞으로 남은 정치의안의 타결에 좋은 선례가 될 지도 모른다.
민한당이 제출한 고문방지근절을 목적으로하는 특가법개정에 여야가 시각을 같이한 것은 인권옹호에 관한여론을 국회가 적절히 수렴한 것이며 단위조합강선출제개선, 독립공채보상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 할 만하다.
다만 이런 실적이 민한당이 당초 내건 「정치회복」에 당력을 집중했기 때문인지, 민정당의 동반자적 고려에서 가능했던 것인지는 다른 측면에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개헌 문제는 정기국회 초반에 큰 쟁점이 되었으나 처음 거론한·야당측에서 조차 후속논의를 제기하지 않아 잠복한 상태로 남아있다.
정기국회도중 민정당공천탈락자명단이란 괴문서가 나돌아 의원들의 관심을 국정심의로부터 잠시나마 이탈하게 한 것과 예산안 삭감목표를 놓고 손발이 맞지 않아 갈팡질팡하던 민한당의 리더십 부족은 유쾌하지 못한 기억 중 하나다.
정기국회막바지에 이진의 문공장관해임안을 놓고 여야가 표대결을 벌인결과는 야당의 궁여지책과 여당의 당내기류를 엿보게하는 한단면이 드러난 것이다. <김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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