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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대 기자의 퇴근후에]불안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중앙일보

입력

톰 역의 이승주(왼쪽)와 김성녀. [사진 명동예술극장]

연극 ‘유리동물원’의 무대는 그랬다. 이 연극은 1930년 미국 대공황시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잿빛 하늘 같은 우울한 시대상이 이들에게 그대로 담겨 있다. 마치 이가 맞지 않은 톱니바퀴가 서로 돌아가며 부딪히는 마찰을 보는 듯 했다.

이 마찰 속에는 웃음 코드가 숨겨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선 여지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분명 불행한 상황인데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내 적응이 됐다. 불행 속에 행복이 있고, 행복 속에서도 불행이 있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큰 몫을 했다. 자녀들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모습과 웃음을 자아내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넘나들어야 하는 아만다 역을 김성녀는 훌륭히 소화해 냈다. 그때 그때마다 바뀌는 그의 표정에 연기 관록이 묻어났다.

로라 역을 맡은 정운선(왼쪽)과 아만다 역의 김성녀. [사진 명동예술극장

인터미션 이후에 빛을 발한 배우는 로라를 맡은 정운선이었다.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피하는 절름발이 딸은 후반부 이야기를 이끄는 주체였다. 정운선은 남편 후보 짐(심완준)과의 만남에서 사시나무가 떠는 듯한 몸짓 연기, 그와의 관계가 조금씩 가까워지며 미세하게 바뀌는 목소리 변화로 극 중 로라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극에서 자신의 소중한 물건(유리로 만든 유니콘)이 깨졌을 때 그녀가 대처하는 모습, 그리고 극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생각의 여운을 짙게 남겼다. 또 음악을 연주하는 첼로 연주자의 등장은 독특해 보였다.

다만 이 연극에는 별다른 무대전환이 없다. 집안이 배경이다. 관객에 따라선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

강남통신 조한대 기자 c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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