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만큼 보이는 무대 스필버그 홀린 그 작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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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30면

ⓒ Mark Douet

“컴플리시테는 내가 극장에 가는 이유다.” 영국의 연극평론가 린 가드너의 말이다.

컴플리시테의 연극 ‘라이온보이’ 5~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영국 대학입시 과정 교과서 ‘A-level’에서 “셰익스피어 중심의 영국 정통 연극에 저항하고, 현대 연극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극단”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컴플리시테(Théâtre de Complicité)다. 시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 세련된 영상, 움직임과 텍스트의 환상적인 융합으로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얻고 있는 세계적인 극단이다. 이들이 한국에 온다. 컴플리시테의 내한 공연은 그간 수차례 시도되었으나, 전세계에서 초청받는 바쁜 일정 탓에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이 처음이다. 까다로운 독설가 린 가드너가 컴플리시테에게 왜 그런 극찬을 했는지, 2014년 초연된 신작 ‘라이온보이’를 통해 확인할 기회다.

테크놀로지보다 화려한 관객의 상상력
‘라이온보이’는 컴플리시테가 창단 30년만에 처음 만든 가족극이다. 모녀 작가 지주 코더(Zizou Corder)가 2003년에 함께 쓴 연작소설이 원작. 출간 당시 “또 다른 해리포터가 탄생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추진 중인 판타지다.

미래의 런던. 주인공 찰리는 고양이 등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다. 과학자인 찰리의 부모가 정체모를 괴집단에게 납치되면서 찰리는 부모를 찾아 나선다. 미래의 런던은 지구 온난화로 한겨울에도 나무에 망고가 열리고, 태양열로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진다. 그 이면에는 치료약 개발을 은폐하고, 기업의 잇속을 불리는 거대 제약 회사의 음모가 있다.

제약 회사에 납치당한 부모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찰리는 우연히 서커스단에서 사자 돌보는 일을 맡아 ‘라이온보이’로 불리게 되고, 사자들과 친구가 된다. 사자들은 서커스단에서 탈출시켜 주는 조건으로 찰리의 부모 찾기를 도와주기로 한다.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거대 기업에 맞서는 찰리의 모험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기술의 발전으로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지나친 이기심 탓에 망가진 자연을 되살려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인간과 자연, 과학이 공존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작품이다.

이 무대는 최근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흔한 하이 테크놀로지 공연과는 다르다. 메시지도, 메소드도 동양적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배우와 무대뿐이지만, 관객의 상상과 결합되면서 가장 화려한 무대장치로 변신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배우들은 모두 1인 다역을 소화한다. 배우 댄 마일른이 생선 장수에서 서커스 단장으로 또 불가리아 군주로 변신할 때, 배우 리사 커는 서커스 배우에서 주인공을 돕는 매력적인 카멜레온으로 변신한다. 이전 작품에서는 책이 날아다니며 새떼가 되기도 하고, 의자가 사람을 대신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상상에 달려있다. 이게 바로 컴플리시테의 시그니처다.

“마술도, 테크놀로지도 없어요. 요즘에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몸과 언어만으로도 이야기가 전달된다는 점을 느끼는 것이 정말, 정말 중요해요. 연극에서 중요한 건 공동의 상상력이죠. ‘나는 사자다’라고 말하면 그냥 사자인 거죠.” 컴플리시테의 예술감독 사이먼 맥버니의 말이다.

ⓒ Mark Douet

즉흥에서 찾은 연극언어 ‘디바이징 씨어터’
컴플리시테는 ‘현대 영국 연극의 대표주자’로 불리지만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극작가와 텍스트 중심의 전형적 연극 전통과는 무관하다. 대본 암기를 통해 인물을 구축하는 대신 오랜 시간 연출가와 배우들이 즉흥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고유한 연극 메소드를 발견해 낸 것. 텍스트를 비롯해 움직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무대 언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연출가와 배우, 제작진이 개발 단계부터 함께 발전시키는 공동창작 시스템 ‘디바이징 씨어터(Devising theatre)’다.

컴플리시테를 독자적 색깔의 세계적 극단으로 만든 비결인 디바이징 씨어터의 핵심도 공개된다. 연출가 클라이브 멘더스와 배우들이 전문배우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연다. ‘퍼포먼스의 스타일: 희극(Comedy and Clown)‘(6일)과 ’퍼포먼스의 기술: 이미지로부터 즉흥(Devising from Images)‘(7일) 등 2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nang.co.kr,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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