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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와 사회적 신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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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한국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그리스·터키·멕시코와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일본의 경우 11%, 미국은 7%인 데 비해 우리는 27%가 넘는다. 신도림역 주변 사방 400m 내에만 치킨점이 30개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서울에는 평균 200m마다 편의점 하나가 있다고 한다. 높은 자영업자 비중은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의 주요 원인일 뿐 아니라 부가가치세·소득세제의 정상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도 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의 과당경쟁과 낮은 수익성은 우리나라 소득분배 악화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만약 신도림역 근처 30개 치킨점이 모여 5개점으로 통합하기로 합의하고 사장님들이 회계도 보고 배달도 하면 인건비뿐 아니라 임대료도 크게 줄일 수 있어 훨씬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출자비율에 따라 나누면 이들 모두에게 이로운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평균 3년 안에 절반이 문을 닫는 자영업을 고집하고 있는가? 한국의 기업들을 봐도 크나 작으나 모두 1인이 지배하는 주식회사다. 회사라는 조직이 처음 보급된 식민지기만 해도 합자회사와 같은 파트너십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외국의 경우에는 몇 사람이 유한책임을 지는 주주로서 경영에 동참하는 합자회사가 많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영국과 미국의 발전 과정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위해 기업 간 합병과 공동경영이 크게 늘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아무개&아무개라는 영미계 회사 이름은 그런 합병과 합자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합자회사가 그리도 없는가? 통계에 의하면 1995~2011년 늘어난 제조업체 수의 대부분은 종업원 9인 이하의 영세업체이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한국 경제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2014)라는 논문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리나라의 낮은 ‘사회적 신뢰’를 꼽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5년마다 조사하는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에 의하면 한국에서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비율은 2010년 26%였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고소득 선진사회일수록 사회적 신뢰의 수준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신뢰의 수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2년 한국에서 위와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한 비율은 38%였던 데 비해 90년에는 34%, 96년에는 30%, 2000년에는 27%였다가 2010년의 조사에서는 26%로까지 낮아진 것이다(이영훈 상기 논문).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 역시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저다.

 경제적인 현상은 사회적·문화적·정치적인 현상과 맞물려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저신뢰 사회’가 반영되고 있는 경제적 현상은 비단 도시 자영업뿐이 아니다. 농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농지면적은 좁은데 집집마다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트랙터 같은 농기구를 따로 구입하니 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농가들이 부채로 시달리게 된다. 마을 공동체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가령 20호 마을에 5대 정도의 트랙터만 있으면 충분하니 5대를 공동 구입해 쓰자고 합의가 되면 농가의 금융비용을 4분의 1로 줄이고 가처분소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의 번성과 공교육의 붕괴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학부모 공동체가 서로 믿고 힘을 합쳐 공교육을 살렸으면 이렇게까지 가계마다 사교육비에 등이 휘고 소비여력이 줄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 초대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역사에 대한 그의 성찰에서 나온 발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는 뭉치는 힘은 점점 약해지고 흩어지는 힘은 강해지고 있다. 이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가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총리, 여야 지도자들이 모두 ‘경제 살리기’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려면 사회적 신뢰부터 살리려는 노력을 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적 신뢰를 살리지 않고서는 지금 정부가 하려는 노동개혁·교육개혁·공공개혁 어느 하나 성공하기 어렵다. 사회적 신뢰는 공정성·투명성·일관성과 포용을 기반으로 자란다. 검찰을 장악하면 어떤 의혹도 정권이 원하는 바대로 결론을 재단할 수 있고, 정책이 바뀌어도 왜 바뀌는지 국민 에게 명확한 설명이 없으며, 편중되고 국민 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사(人事), 부패와 거짓해명의 시간 이 쌓이게 되면 어떤 단기적 경제활성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장래 한국 경제는 점점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