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낡은 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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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빠가 출근하시고 나면 떠들썩하던 집안이 갑자기 숨을 멈춘듯 조용해지고 벽에 걸린 괘종시계의 흔들리는 추 소리만 낙엽 떨어지둣 귓가에 차례로 떨어진다.
한가한 틈을 내어 지난여름 아이들과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으며 찍은 사진과 그동안 틈틈이 찍어놓은 사진들을 사진첩에 정리하려고 사진첩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다.
누렇게 퇴색되고 약간낡은 두장의 사진 시댁 사진 상자 속에서 발견하여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 사진은 아빠의 군복무 때의 것이다.
아이들 아빠는 대구에서 군대생활을 하던 중 부대주위에 살고있는 너무 가난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구두를 닦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부대에서 빈 천막을 치고 야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봉학학원」 이란 이름으로 30∼40명의 아이들을 전깃불을 켜놓고 가르치고 있는 이 사진에서는 『선생님 저요 저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단 한장의 사진은 아빠와 같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동료 세사람과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배우고싶은 마음으로 모여든 아이들, 그 옆에 「봉화학원」이란 글씨가 또렷한 사진이다.
벌써 이 사진속의 아이들도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겠지.
우리집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언제나 인정있게 살아갈 것을 가르칠 땐 이 사진을 보여준다.
「이웃을 사랑하며 남을 도울줄 아는 사람이 되라」 고.
아이들에겐 벌써 여러차례 이 사진을 보여 주며 아빠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아빠가 하신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다.
많은 사진중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 사진이 훗날 우리 아이들이 인정있고 따뜻한 인격을 갖추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489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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