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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Who & Why] "대통령이 찾는 모델은 김정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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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의 대답은 어제와 같았다. “인사와 관련해선 오늘도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 26일로 벌써 아흐레째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의가 수용됐지만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3월 1일 중동 순방 외교를 떠난다. 올해 첫 해외 순방이다. 대통령이 없을 때 청와대를 지키는 건 비서실장이다. 대통령은 왜 후임 실장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대통령의 생각을 잘 안다는 청와대 한 참모에게 26일 오후 물었다.

 -언제 발표하는 건가.

 “아직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순방 전에 발표하나.

 “후보자에게 의사를 타진했는데 답을 기다린다는 얘기가 있다.”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대통령 외에 아는 사람이 없을 거다.”

 청와대 안과 밖에 있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한 결과 비서실장 인선이 늦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려졌다.

 ①“김정렴 같은 사람이 없어서”=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람이다. 집권기간(18년6개월) 중 절반인 9년3개월을 보좌한 ‘경제통’ 최장수 비서실장이다. 청와대 기강을 엄격히 했고, 상공부 장관 출신으로 경제도 챙겼다. 실세형이 아닌 참모형에 사심 없던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시절 비서실장이기도 하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은 실장이 능력 있고 사(私)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마지막 공직으로 지낼 사람을 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김정렴 전 실장이 바로 그 모델인데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②“김기춘 같은 사람이 없어서”=아이러니하게 김정렴에 가까운 사람이 김기춘 실장이다. 박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김 실장을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 “자리에 연연할 이유도 없이 옆에서 도와주셨다”고 극찬했다. 그런 김기춘의 대체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한 지인은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이 유능하긴 하지만 김정렴 모델에 비춰 보면 단점들이 명백히 보이니 선택이 어려운 것”이라며 “실장직을 제안받더라도 김기춘 실장의 후임이란 점이 부담스러워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가수들도 조용필·이미자 다음에 노래하기는 싫은 것 아니냐”고 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6일 증권가 ‘찌라시’엔 박 대통령의 경제 과외를 맡았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까지 등장했다.

 ‘아무개가 고사했다’는 소문도 늘고 있다. 이명재 민정특보의 고사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박 대통령이 ‘김정렴 모델’로 이 특보에게 실장직을 제의했으나 이 특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특보는 박 대통령이 특보단 중 유일하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맡아 달라고 부탁한 인물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이명재 실장-우병우 민정수석’이면 김기춘 실장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총리 제안도 고사한 이 특보로선 손을 내저었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한덕수 전 총리의 고사설도 번지고 있다.

 여권 내에선 결국 박 대통령이 눈높이를 낮추든지, 아니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적임자를 찾거나 해야 비서실장을 낙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당·청 소통을 중시해 권영세 주중대사 등 당을 잘 아는 사람을 선호하고 있지만 비서실장 인선에 당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완구 총리를 지명할 당시에도 발표 40분 전에야 김무성 대표 등에게 알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밤에도 “새 비서실장이 27일 발표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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