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884)독도 학술조사-제80화 한일회법(8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가 해방이후 독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된 것은 47년께부터였다.
당시 군정청 민정장관이었던 민세 안재홍선생은 한국산악회에 독도에 대한 학술조사를 하도록했다. 제1차학술조사단에 참여했던 신석호국사관장은 「독도소속에 대해」라는 논문을 통해 『필자는 46년8월16일부터 약2주일간 독도를 실지 답사한 일이 있으므로 이글을 써서 독도가 본래 우리나라에 속한 섬이었던 것을 명백히하려한다』고 했다.
신박사는 학술조사를 통해 85세의홍재현옹(울릉도 남면사동170)이 독도의 소속에 관해 논증한 귀중한 증언을 채록해 소개하는 성과를 얻었다.
홍옹은 60년전 강릉에서 울릉도로 이사해 당시까지 살았는데 『독도가 울릉도의 속도라는 것은 울릉도 개척 당시부터 도민이 주지하는 사실』이라고 전재하고 『나는 45년전, 그러니까 l802년부터 김양유·배수검동지들과 강치포획등을 위해 독도에 상륙, 지금까지 45회나 왕복했다』고 밝혔다.
홍옹은 더우기 『광무10년, 그러니까 1906년에 일본 기맥도 하급관리 10여명이 울릉도에 도래해 독도를 일본의 소유라고 무리하게 주장한 사실을 나도 아는 일』이라면서 「당시 군수 심전택씨는 그들의 무리한 주장에 대해 반박, 항의하는 동시에 이같은 부당한 일인의 위협을 배제키위해 상부에 보고했다는 것을 당시에 들었다』고 40수년전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조사단원중 외무처 추인봉 일본과장등 관리들은 독도를 실측한후 울릉도 남면소속 독도란 양주를 설치하기까지했다.
따라서 평화선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으나 일본은 엉뚱한 야심을 품고 우리의 평화선에 대항하는 소위 ABC선은 그어 독도를 그 안에 포함시켰다.
일본해상보안청순시선이 경비한다고 52년7월13일에 그은 ABC선이 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가는 그 선안에 독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포함됐다는 점이다.
독도주변 해역까지그들의 순시선이 경비하겠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불문가지가 아닌가.
그러니까 「클라크」유엔군 사령관은 그해 9월26일 클라크 라인이라는 방위선을 쳐서 일본의 음흉한 기도를 좌절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ABC선은 한토막의 웃음거리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도 일본은 가소롭게도 53년6월13일에 2명의 도근현어민에게 독도에 대한 어업허가권을 발부했고 54년 2월에는 우부대등 3인에게 독의 채굴권을 허가하는등 망동적 행위를 계속하는 한편 독도침범을 자행했다.
53년5월28일 1차침범을 시발로 6월11일, 17일, 28일을 잇달아 침범했는데 독도에서 어로중이던 우리어민들에 따르면 그들은 늘 미국기를 단배를 타고 독도에 상륙하는 위계를 썼다는 것이다.
6월28일 침범한 일본인들은 성조기를 단 함정 2척을 타고와서 「일본도근현거기군오개촌」이라는 표목을 세우고 우리 어민들에게 우리말로 『이섬은 일본의 영토이니 이후 본도에 침범, 작업을 하면 일본 경찰에 인치당한다』고 위협한후 퇴거하까지했다. 이런 일이 53, 54년에 수차례 계속됐으며 일본은 특히 우리가 세운 우리국토양식를 철거하거나 우리 어민들에게 발포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독도에 대한 자위권의 동원도 불사하겠다고 호언하는 작태를 보였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우리 정부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대응을 하지않을 수 없었다. 54년 11월30일 우리 관헌은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경비정에 포격을하고 계속 침범이 자행될 경우 전투기에 의한 폭격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과시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알고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고 제의하는등 한발짝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으나 우리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당시 내가 기초해 변영봉외무장관이 발표했던 독도에 관한 성명은 우리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최초의 희생물이다. 해방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독립의 상징이다.
이섬에 손을 대는 자는 모든 한민족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 몇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형예의 닻이다.
이것을 잃고서야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 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