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고향 농촌 살리기 팔걷은 퇴직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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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재완씨(왼쪽에서 셋째)가 충남 서천군 기산초교에 세운 '우리문화 학습박물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박물관을 건립하고 퇴직금으로 개인식물원을 조성해 농촌을 활성화한 전직 교장선생님이 있다.

10일 오후 2시 충남 서천군 기산면 화산리 기산초등학교 '우리문화 학습박물관'. 이 마을 주민 김재완(66)씨가 서울에서 온 관람객 20여 명에게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씨앗을 뿌리는 데도 기계를 사용했습니다. 밥을 담아 먹던 막사발이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김씨의 설명은 계속됐다.

관람객들은 "시골 학교에 이렇게 훌륭한 박물관이 있는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시골 학교 박물관인 이곳은 2001년 10월 김씨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2002년 2월 교직에서 은퇴한 그는 평소 어린이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려면 문화와 문명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제대로 된 역사문화 교육을 위해서는 박물관이 많아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1999년 자신의 모교인 기산초교 교장으로 부임한 그는 곧바로 박물관 건립에 나섰다. 우선 도 교육청에 건립에 필요한 예산 6000만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시골 초등학교에 박물관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3년 동안 도교육청 관계자들을 설득한 끝에 2001년 초 예산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돈으로 학교 건물 3층에 60여 평 규모의 박물관을 지었다.

한편으론 유물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초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해 교육에 필요한 유물 목록을 작성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전국의 골동품 수집상.고미술상 40여 명에게 도움도 요청했다. 59년부터 취미로 '화폐수집'을 해 온 덕분에 많은 골동품 수집상 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물은 자신의 돈을 주고 직접 사거나 기증받았다. 유물 구입에 들어간 4000여만원 가운데 1000만원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넣었다.

1년 가까이 모은 유물이 200여 점. 농기구.생활도구 등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모아졌다.

박물관이 세워진 뒤 이 학교는 서천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3000여 명이 관람했다. 그는 퇴직 후에 아예 박물관 '가이드'로 나섰다.

학교가 유명해지자 해마다 학생 수도 늘어났다. 전교생 수가 2002년 91명에서 올해엔 108명이 됐다. 이 학교 이종화(57.여)교장은 "박물관이 훌륭한 교육여건이라고 인식되면서 학부모들이 다른 읍.면으로 이사해도 자녀는 전학시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퇴직금 2억여원을 몽땅 털어 화산리 집 앞에 4000여 평 규모의 서천식물예술원(식물원)을 조성,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이 곳에는 자신이 수집한 일본 금송 등 희귀식물 200여 점과 분재 200여 점, 옹기 500여 점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에만 5000여 명이 다녀갔다.

식물예술원은 마을 주민들에게 농촌체험관광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만든 기폭제도 됐다. 주민 60여 명이 호박빵 만들기.콩 구워 먹기.칼국수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 연간 100여만원의 소득을 얻고 있다.

김씨는 "나의 노력이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과 침체됐던 농촌 경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같아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글.사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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