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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가슴에 태극기 달고 뛰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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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수원은 25일 올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인 우라와 레즈(일본)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정대세(왼쪽 넷째)가 프리킥을 막고 있다. [수원=뉴시스]
북한 국적 공격수 정대세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다. 수원은 아시아 챔 스리그 유니폼에 태극기를 달았다. [중앙포토]

정대세(31·수원). 그리고 태극기.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싶던 두 단어가 하나가 됐다. 이념과 국적을 초월해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축구의 마법 덕분이다.

 북한 축구대표팀 공격수 출신 정대세가 인공기 대신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다.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라와 레즈(일본)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G조 1차전에 정대세는 태극기가 새겨진 수원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수원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용 유니폼 상의 왼쪽 가슴 부위에 작은 태극기를 달았다. K리그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클럽으로서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아들 태주를 얻은 이후 정대세는 성격부터 행동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이전엔 감정의 기복이 컸다. 울다가도 웃었다. 생각을 여과 없이 표현해 동료들과 종종 마찰을 빚기도 했다. 요즘엔 다르다. 차분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노력 중이다. 아빠이자 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의 힘이 크지만, 본질은 더 깊다. 정대세는 요즘 들어 ‘진짜 한국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겐 “은퇴 이후 한국에서 축구와 관련한 일을 하며 사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정대세는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 기간 중 가슴앓이를 했다. 북한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싶었지만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K리그에서 뛰는 재일동포 출신의 북한대표팀 선수’라는 복잡한 현실 때문이었다. 북한도 수원도 정대세가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정대세는 아시안컵 불참의 아쉬움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풀고자 한다.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아시아 정상에 서는 게 목표다. 우라와전에서 정대세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0-1로 뒤진 후반 11분 동료 오범석(32)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해 올 시즌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수원은 후반 43분 프리킥 찬스에서 교체 공격수 레오(26)가 머리로 결승골을 터뜨려 2-1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과 일본 프로축구 최고 인기 클럽 간 맞대결로 관심을 모은 경기에서 수원이 먼저 웃었다.

 우라와전은 정대세가 손꼽아 기다린 경기다.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 시절 세 차례의 우라와 원정경기서 두 골을 터뜨려 ‘레즈 킬러’로 명성을 떨쳤다. 시간이 흘렀고 소속팀이 바뀌어도 정대세는 여전히 우라와에 강했다. 욕심 내지 않고 동료들에게 찬스를 내주는 이타적인 플레이로 공격 흐름을 주도했다. 정대세는 자신과 같은 재일동포 3세로 일본 귀화를 선택한 이충성(30·일본명 리 타다나리)과의 ‘절친’ 대결에서도 판정승을 거뒀다. 이충성은 후반 18분 교체 멤버로 그라운드에 투입됐으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정대세는 “K리그 최고 인기 구단의 자존심을 지켜 기쁘다”면서 “우라와 원정경기에서는 반드시 골을 넣겠다”고 말했다. 한편 FC 서울은 광저우 헝다(중국)와의 H조 원정경기에서 0-1로 패배했다.

수원=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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