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예의 없는 녀석들 … 나 이러다 쌈닭 될까 두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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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억누르다보면 작은 일에도 폭발

Q(공연장서 욱해버린 30대 남성) 전 30대 중반 남성입니다. 요즘 들어 다른 사람의 예의 없는 행동을 못 참겠어요. 얼마 전에 큰 맘 먹고 아내와 결혼 3주년 기념으로 발라드 가수 콘서트에 갔는데 뒷사람 잡담이 너무 심해서 참다 참다 말을 했습니다. 조용히 좀 해 달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뭐래 뭐래 나보고 조용히 해 달라네.” 그 말에 더 열을 받아서 상대방에게 “매너 없다”는 말까지 해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맘이 상해 그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콘서트도 못 보고 티켓 값만 날린 꼴이 돼 버렸죠.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요. 어느 선까지 참는 게 맞는 걸까요. 요즘엔 남의 일에 신경 끄는 게 낫다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저 이러다가 ‘쌈닭’이 될까봐 무섭습니다.

A(공연장서 끝까지 참은 윤 교수) 오늘 사연은 분노 조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외부로 화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화를 내면 우선 내 몸이 망가집니다. 화를 낼 때는 실제로 혈압이 올라가고, 그 혈압이 혈관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염증 물질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중풍이나 심근경색이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연도 화를 내니 상대방과 시비가 붙었고, 즐기기 위해 간 콘서트에서 중간에 나와 버리는, 나만 손해 나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저도 지난주에 콘서트를 갔는데 뒤에서 계속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쩍벌남’이었는지, 한 아줌마가 왜 자기 자리까지 차지하냐고 하면서 서로 시비가 붙은 것이었습니다. 시끄럽게 15분 이상을 싸워 저도 짜증이 났습니다.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마음 속으로만 그들을 미워하면서 억지로 공연에 집중하긴 했는데요, 지금 또 그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아직 저도 분이 풀리지 않았나 봅니다.

 분노에 대해 우리가 주로 쓰는 조절 전략은 찍어 억누르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죠. 그러나 계속 억누르다 보면 오히려 조절장치에 무리가 가서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일에 신경 끄라는 말은 분노를 억지로 억제하라는 것인데요. 그러다 보면 갑자기 내 안에 있는 큰 쌈닭이 불쑥 튀어 나오기 오히려 쉬워집니다.

02 친철 마케팅에 중독된 시대

Q정말, 제 안에 쌈닭이 느닷없이 튀어 나옵니다. 콘서트 사건이 있은 후 주변에 거슬리는 일에 반응 안 하고 신경 끄고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업무가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쪽이다 보니 항상 밝은 웃음을 지어야 하는데 열 받게 하는 고객을 상대하면 속으로 화가 쌓일 때가 많습니다. 그걸 너무 눌러서인지 엉뚱한 곳에서 화가 터져 나옵니다. 인터넷으로 해외직구 대행업체에서 옷을 구매했는데 사이즈가 다른 것이 왔습니다. 그냥 이야기하고 환불 조치하면 되는데 제가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육두문자까지 날렸습니다. 그런 저 자신을 보면서 인간성이 파괴던 건 아닌가 속상하고 슬펐습니다.

A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친절이 상업화되다 보니 분노 조절의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절은 나에게 고운 말과 표정을 보이는 사람한테 나오는 자연스러운 나의 감정 반응인데 상대방의 태도와 상관 없이 감성 노동으로 억지 친절을 만들다 보니 화가 쌓이게 되고, 그 화가 내가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땐 정신 못 차리고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기계적 친절’이 싫다며 서비스 업체에 민원을 내는 고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인간이 자신을 기계처럼 낮추어 친절을 제공하는데 그것이 싫다니 슬픈 일입니다. ‘진짜 친절’을 달라며 아우성이지만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진짜 친절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 재화에 친절을 끼워 파는 감성 마케팅으로 인해 달콤한 친절에 대한 수요는 너무나 증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진짜 친절은 더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고객은 친절 마케팅에 중독되어 재화 그 자체보다는 친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차를 사면 차의 성능이 좋으면 그만이죠. 그런데 판매 직원의 불친절에 차를 반품하겠다고 노발대발합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호전됐는데 원무 직원이 진료비 수납할 때 태도가 성의 없다면 화를 내니 병이 덧날 지경입니다.

 친절이란 상대방에 대한 존중입니다. 사람은 존중 받고 존중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사람의 본질적인 욕구, 남에게 존중 받는 것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친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 내 자존감이 가득 차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게 된 세상이 문제지요. 막상 돈으로 친절을 사도 기계적 친절은 싫다, 진짜배기 친절을 달라 아우성칩니다. 하지만 진짜 친절은 돈으로 가질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03 잘 놀아야 화가 줄어든다

Q그렇다고 고객에게 내 감정을 다 보일 수도 없고, 인생 살기 힘드네요. 제가 왜 화가 쌓이는지는 이제 대충 알겠는데 그렇다고 거짓 친절이 싫다고 짜증내는 고객에게 다 화를 낼 수는 없잖아요. 가장이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요즘 화가 나면 심호흡이 도움이 된다 하여 해보는데 너무 짜증이 날 때면 그것도 잘 안 됩니다. 분노조절 어떻게 해야 하나요.

A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노조절 전략이라고 하면 먼저 화를 찍어 누르는 것에 우리가 가장 익숙하고 많이 사용하죠. 그러나 화를 계속 쌓게 되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더 큰 화가 튀어 나옵니다. 그래서 표현하라는 이야기도 많은데 이것도 정답이 아니죠. 남과 더불어 사는 세상인데 자기 속의 화를 마구 끄집어 내고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합니다. 화를 찍어 누르는 것, 그리고 화를 그대로 방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노조절 전략을 소개하자면 먼저 이완요법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몸의 생물학적 공격 반응을 이완하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한다거나 조용히 걸으면서 즉각적인 분노 반응이 터져 나오는 걸 지연시키는 방법입니다. 인지의 재구성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각각의 아킬레스 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은 내게 나쁜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데 내가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분노 감정을 일으킨 사고의 흐름과 인지 과정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죠. 같은 단어도 사람들은 다 다르게 해석하기에 분노 반응을 객관화하여 생각해 보는 것, 도움이 됩니다.

 문제해결 전략도 있습니다. 분노는 감정 반응이고 실제 분노를 일으킨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겁니다. 원인이 없어지면 화를 낼 일이 없을 테니깐요. 적극성 기르기 훈련도 있습니다. 즉각적인 분노를 표현하지 하지 않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합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 기술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 이 전략들을 어느 정도 섞어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수시로 생기는 분노 반응을 조절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이런 분노조절 전략들마저 너무 많이 쓰다 보면 마음에 더 깊숙한 화를 만든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화를 2차적으로 처리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죠.

 분노 조절과 더불어 분노의 예방이 필요합니다. 분노감은 내 뇌가 지치고 피로하면 더 강하게 나오게 됩니다. 이성과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잠시나마 아름답게 보이는 경험, 한 번쯤은 해 보셨을 텐데요. 사랑의 에너지가 뇌에 따뜻한 기운을 주어 세상에 대한 시각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죠. 분노 예방은 뇌를 즐겁게 해주는 것입니다. 잘 놀아야 화가 줄어듭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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