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이번엔 '로비 게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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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출신의 로비스트인 잭 아브라모프가 2003년 아프리카 가봉의 오마르 봉고 대통령에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해 준다는 명목으로 900만 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 이뤄진 양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아브라모프의 로비가 작용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미 정가에 큰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10일 아브라모프가 봉고 대통령에게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할 능력이 있다며 돈을 요구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가 봉고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 등을 공개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가봉에 대해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해 왔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과 봉고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된 만큼 물밑 로비 작업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악관 측은 "회담은 정상적인 채널을 통해 이뤄졌다"며 로비 의혹을 부인했다. 아브라모프는 현재 사기 등의 혐의로 연방 대배심의 조사를 받고 있다.

◆ 대통령 팔아 돈 요구=아브라모프는 2003년 7월 28일 봉고 대통령에게 "나는 부시 대통령과 면담을 성사시킬 수 있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봉에서 전세기를 내주면 직접 찾아가 논의할 의향도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열흘 뒤인 8월 7일 "가봉의 위상을 높이는 홍보와 더불어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해 준다"는 계약서 초안을 가봉에 보냈다. 그러면서 세 차례에 걸쳐 300만 달러씩 모두 900만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그래스루트 인터랙티브(GRI)'라는 로비회사로 보내 달라고 했다.

부시 대통령과 봉고 대통령의 면담은 2004년 5월 2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뉴욕 타임스는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아브라모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가 실제로 가봉의 돈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보도했다.

◆ 수상한 돈, 로비자금 아닌가=2003년 GRI 계좌에 수백만 달러가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 그중 230만 달러는 캘리포니아의 한 컨설팅 회사로 들어갔다. 이 회사의 주소는 아브라모프의 동생이 운영하는 법률회사와 주소가 같다. 또 40만 달러는 아브라모프의 가족이 운영하는 '케이 골드'라는 회사에 입금됐다. 이 돈의 출처가 가봉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 돈이 봉고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으로 확인될 경우 초점은 백악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 돈이 백악관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 아브라모프는=한때 워싱턴 정가에서 최고의 로비스트로 통했다. 콩고의 독재자 모부투 세코 대통령을 위해서도 로비를 했다. 동업자였던 데이비드 사파비안을 통해 가봉과도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플로리다주에서 사기죄로 기소된 상태다. 그는 법무부에 등록하지 않은 채 불법으로 외국 정부를 위해 로비해 온 혐의로 상원의 조사도 받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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