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저가 담배'의 꼼수 … 국민을 바보로 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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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설 연휴 국민은 황당한 메뉴를 밥상 머리에 올려놓아야 했다. 저가(低價) 담배다. 먼저 불을 지핀 건 여당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설 연휴 직전인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가계 부담을 덜어 준다며 시판되는 담배보다 값이 싼 저가 담배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러자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도 19일 “(손으로 말아서 피우는) 봉초 담배에 한해 세금을 일부 깎아줄 필요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경로당 등 민생 현장에서 의견을 수렴했다지만 이는 정책의 신뢰와 일관성을 송두리째 훼손하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여야가 모처럼 쉽게 의견일치를 본 게 고작 이런 사안이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당장 보건복지부부터 당혹해하고 있다. 복지부는 여당이 아무런 사전·사후 논의도 없이 불쑥 저가 담배를 거론하는 바람에 “정치권의 진의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금연 정책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정작 더 황당하기는 국민이다. 국민들이 ‘꼼수 증세’로 비판하면서도 큰 폭의 담뱃값 인상을 받아들인 것은 “담뱃값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라는 정부의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뱃값을 올린 지 두 달도 안 돼 ‘서민 부담을 줄여 준다’며 저가 담배를 만들어 팔겠다니 이게 웬 말인가. 지금까지 정부·정치권이 내세운 ‘국민 건강을 위한 담뱃값 인상’이 사실은 다 헛말이었다고 스스로 자백한 꼴 아닌가.

 저가 담배는 기존 담배보다 질을 낮춰 더 건강에 해로운 ‘꼼수 담배’일 가능성이 크다. 서민이나 노인은 더 질 낮은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것인가.

담뱃값 인상 후 모처럼 금연 분위기가 확산되고 보건소의 금연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만 15만 명을 넘어섰다. 저가담배는 이런 금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꼼수 증세’에 이어 ‘꼼수 값싼 담배’ 같은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정부·정치권의 말을 자꾸 의심하고 뒤집어 보게 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국민이 의심하게 되면 무용지물이다. 여야는 당장 저가 담배 구상을 거둬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