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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On Sunday

문재인이 '이회창 평행이론' 깨려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을미년 설 민심의 풍향계는 요동치고 있었다. ‘골수 여당’ 성향의 친척들마저 이구동성으로 ‘다음(대선)엔 정권이 바뀔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16∼17일 설문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율은 34.7%, 새정치민주연합은 33.8%로 불과 0.9%포인트 차였다.
주요인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부상이다. 함께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문 대표는 27.5%로 6주 연속 1위를 지켰다. 이 기간 내내 지지율이 상승했다. 2위인 박원순(11.2%) 서울시장, 3위 김무성(9.0%) 새누리당 대표와 큰 격차다.

문 대표의 상황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떠오른다. 둘은 모두 강직한 성품의 법조인 출신이다. 전형적 정치인과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한 이 전 총재는 이듬해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자 8월 전당대회에서 조순 당시 총재를 누르고 당권을 장악했다. 문 대표의 상황과 몹시 흡사하다.

이 전 총재는 그 후 2000년 16대 총선 공천에서 ‘젊은 피 수혈’을 명분으로 조순과 민정계, 상도동계를 몰아내고 친위세력 구축에 성공했다. 총선에선 수도권에서 밀렸지만 원내 제1당 지위를 유지했다. 이후 2002년 대선의 해가 밝기까지 이 전 총재는 의심의 여지 없는 차기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바람과 ‘차떼기’ 사건으로 지지율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두 번째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문 대표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자 항간엔 ‘이·문 평행이론’이 떠돌기 시작했다. 문 대표 입장에선 불길한 현상이다. 이 전 총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그와는 달라야 한다. 이 전 총재는 대세론에 안주했다. 몸을 굽혀 당내 견제세력을 포용하지 않았다. 귀족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한마디로 여의도 바닥에 몸을 내던져 구르지 못한 것이다. 2007년 세 번째 대선에선 ‘이회창이 진짜 정치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때는 늦었다.

문 대표도 진짜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대표 경선을 치르며 어눌했던 웅변엔 점차 패기가 실렸다. 약점으로 지적되던 권력의지 부족이 해소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될까. 그에겐 숙제가 더 남았다. 친노 좌장으로서 비노진영을 다독여 우군으로 만드는 일이 급하다. 단순히 당직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 그야말로 조정과 협상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또 ‘반(反)박근혜’를 넘어 문재인표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소득 주도 성장론’에 각론을 채워야 한다.

이런 준비를 충실히 거쳐야 내년 총선에서 비로소 ‘대안적 지도자’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선거 결과는 ‘문재인이 얼마나 정치인으로 거듭났느냐’의 성적표다. 대선 가도가 탄탄대로가 될지, 거기가 끝일지 그때 결정된다.

이충형 정치부문 기자 adch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