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막바지에 ″복병″출현|기로에선 ″의회법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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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년을 끌어왔던 국회법개정안을 둘러싼 여야협상이 막바지 정치절충과정에서 민정당측이 제기한 상임위 발언시간제한이란 뜻밖의 복병에 걸려 원점으로 돌아가느냐,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 11대국회가 개원되자마자 민한당이 이른바 개혁입법이란 성곽의 한쪽 귀퉁이라도 허물어보겠다는 의도로 국회법개정안을 제출했을 때부터 주요 관철목표는 ▲국정조사권발동요건완화와 ▲상임위 예산심사권 부활의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11대국회의 첫 공전을 기록했던 지난 6월 임시국회 후 3당대표의 합의에 따라 구성됐던 국회운영제도연구소위는 그 동안 민한·국민당이 내놓은 17개 개정요구조항 중 ▲본회의발언의 정당별 시간 할당제 ▲비공개비밀자료의 열람·대출 ▲회의록의 배부·반포 등을 수정키로 합의했지만 이것은 「문제성이 별로 없는 지섭적」인 항목들이었다.
민정당측은 국정조사권개정에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또 상임위의 예산심사권에는 상임위의 상설화로 맞섰다. 22일의 소위에서 민정당측은 상임위발언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하자는 제안을 제기했고 민한당측이 퇴장함으로써 소위는 결렬되고 국회법협상은 총무회담의 정치적 절충으로 넘어갔다.
총무회담의 절충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국정조사권은 개정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상임위 예산심사권 부활은 상임위 발언시간제한이라는 단서가 붙지 않으면 타결될 수 없다는 것으로 소위의 절충선에서 사실상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
따라서 1일 열린 민한당과 국민당의 당무회의는 이 부대조건을 수락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집중 토의했고, 그 결과는 『상임위 발언시간제한은 국회법의 개악이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당론으로 나타났다.
여야는 제각기 자기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민정당측은「조건없는 상임위예산심사권 부활은 곧 과거 국회의 폐습과 직결시킨다. 과거 국회에서 야당은 상임위 예산심사권을 그때 그때의 정치문제와 결부시켰고 의원들은 자기지역사업의 예산증액이나 요구했으며 결국 예결위에서 최종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로의 퇴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민정당측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종찬민정당총무는 『국회법이 과거의 경험을 귀감으로 삼아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새국회상을 정립하는 방향으로 고쳐지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민정당측은 몇몇 의원이 장시간 발언함으로써 발언을 못하게되는 다른 의원들에게도 고루 발언할 수 있게 해줘야한다는 기회균등 점도 내세우고 있다.
민한·국민당측의 시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현행 국회법에 상위의 발언시간을 무제한 허용하고 있고 단서규정으로 「필요할 경우 위원장이 발언자수와 시간을 제한할 수 있게」하고 있다. 따라서 단서조항에 있는 예외규정을 확대하는 것은 무제한 발언을 규정한 법조항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현행제한규정을 활용해서 운영의 묘를 살리면 발언시간제한을 명문화하지 않더라도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한당당무회의에서는 『상임위의 발언시간제한이 오히려 상임위를 경직시키고 지루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민정당측이 현행규정으로는 『위원장도 같은 의원인데 명문 규정 없이 어떻게 동료의원의 발언을 제한하느냐』고 주장하면 야당측은 『20분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스톱워치를 가지고 잴 수도 없다면 마찬가지』라고 응수한다.
민정당측이 『횟수에 제한이 없으므로 발언은 자유롭게 허용되는 것과 같다』고 하면 야 당측은 『발언의 맥이 끊어지고 발언봉쇄용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맞선다.
야당일각에서도 발언시간 20분을 30분정도로 늘리면 할말은 다 할 수 있으므로 상임위 예산심사권을 얻어내는 게 현실적인 이득이라는 득실론을 주장하는 의원도 있고 국회법이 잘 타결되지 못하면 앞으로 다른 정치의안 해결도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식이든 「제한」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론에 밀리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민정당측의 당내설득 및 보고용 명분과 『우리 손으로 국회법을 개악할 수는 없다』는 야당측의 명분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있다. 그것은 또 국회를 보는 현각의 차이이기도 하다. 민정당측이 국회를 기능적 차원에서 본다면 야당은 어쩔 수 없이 국민을 의식하는 정치적 관점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임위 발언시간 제한이라는 난관을 넘기 위해서는 여야간에 적절한 양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민정당측이「제한」을, 야당측은 당론으로 「철회」를 마지노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양보란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총무회담에서 발언시간 제한을 합의문서 형식이나 상임위운영 규칙형식으로 반영해보자는 대안도 나왔지만 민정당측은 『당내설득용으로는 미약하다』, 민한당측은『어떤 형식이든 발언시간제한은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백으로 남겨둔 국회하반기 운영일정이 각 당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당초 국회법타결이 선행되지 않으면 예산심의에 응할 수 없다는 민한당측 강경태도로 국회는 1일까지의 본회의 일정에만 합의했었다. 배수진을 친 1일의 총무회담이 무위로 끝나는 바람에 2일 국회는 휴회하고 말았다. 한 걸음 자칫 잘못내디뎌 국회의 공전이 장기화한다면 이것은 예측 못할 파국으로 흐를 위험도 없지 않다.
민정당측은 이미 국회법협상의 장기화에 대비해 국회의사일정협의를 분리해서 진행하자고 제의했으나 야당측은 일단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1일 민한당 당무회의에서 몇몇 의원이 제기했듯이 야당측도 예산심의 등 국회운영과 국회법협상은 분리해서 따로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틈을 보이고있다.
여야 모두 국회의 장기공전이란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하는 처지여서 만약 2일의 총무회담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할 경우 국회는 하루이틀정도 겉돌다 현행국회법대로 운영될 수밖에 없고 국회법 개정안은 다시 장기협상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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