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초등생 "우리는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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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야외현장 학습을 나온 덕치초등학교 어린이들과 김용택 시인.

'벚꽃이 예쁩니다/예쁜 벚꽃을 보면 이모 생각이 납니다.'(양지현.1학년)

섬진강변의 자그마한 시골 초등학교인 임실군 덕치초등학교(교장 최기남) 전교생 30명이 최근 '우리 형 새똥 맞았다'는 제목의 시집을 펴냈다.

이 책에는 섬진강과 회문산, 나무와 꽃, 동네 풍경 등 어린이들이 주변환경을 바라보면서 느낀 순수함과 순박함이 묻어나는 114편의 시가 실렸다.

'새똥도 똥이다/똥 아니랄까 봐 구린내가 진동한다/우리형도 새똥에 맞았다'(전주인.5학년)

'소가 오줌을 싼다/처음에는 수도에서 물 나오는 줄 알았다'(박문영.6학년)

해맑은 동심이 여과없이 그대로 담긴 아이들의 시는 이 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김용택 시인의 지도로 이뤄졌다.

김 시인은 매주 수요일 아이들을 섬진강 개울가나 학교 나무 밑으로 데리고 나가 야외수업을 하며 글쓰기를 가르쳐 왔다. 사물을 보고, 무엇인가를 연상하거나 떠올린 뒤 정리하는 방법을 일러줬다.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어 했지만 점차 무심코 대했던 주위의 사물을 관찰하는 힘을 기르게 됐으며 동심이 그대로 배어난 시를 짓곤 했다.

김 시인은 이달 초 서툴고 어색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아이들의 시에서 받침과 띄어쓰기, 행 갈이만 고친 뒤 동료 교사들과 함께 돈을 모아 시집 150부를 찍어 학생.학부모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진유빈(2학년)양은 "언니.동생들의 손을 잡고 섬진강 개울가에 나가 시를 쓰는 시간이 가장 신난다"며 "열심히 시를 써 선생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아이들의 생각을 소중하고 귀하게 가꾸려는 것이 글을 쓰게 하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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