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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서커스의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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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유럽과 북미에선 요즘 서커스를 '금세기 최고의 문화 상품'이라고 부른다죠.폭풍전야처럼 아직 우리에겐 낯설지만, '서커스 빅뱅'은 곧 한국도 점령할 태세입니다.잇따라 국내 관객 앞에 나서는 벨기에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13일까지)과 1992년 미국 LA에서 초연된 '디아볼로'(9~13일)는 그 맛보기라고 하네요.

다시 도래하는 서커스의 시대, 업그레이드된 서커스의 세계로 한발 살짝 디뎌보실까요.

서커스의 혁명 - 태양의 서커스

1982년 캐나다 퀘벡주 동부의 작은 마을 베이생폴. 20대 초반의 기 라리베르테란 젊은이가 있었다. 10대부터 거리를 헤매며 서커스에 푹 빠진, 하지만 그저 그런 곡예사였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간단한 마술과 외줄타기뿐. 그러나 그에겐 '창조력'이란 재능이 숨어 있었다. 그는 이전까지의 서커스와는 다른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코디언 연주자, 저글링 고수, 바이올리니스트 등을 끌어모아 '하이힐 클럽'이란 거리 광대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토리를 짜고 음악을 깔고 입체감을 살린 낯선 서커스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히트를 예감한 그는 퀘벡주정부에 재정지원을 요구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마땅한 문화상품이 없던 캐나다 정부는 이 '특이한 서커스'에 구미가 당겼다. 1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다. 그들이 일으킨 지각변동은 엄청났다. 지난 20여 년간 태양의 서커스는 120여개 도시에서 공연됐고, 관람객은 4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연매출 5억 달러(약 5240억원), 기업 가치 10억 달러(1조480억원)의 거대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성장했다. 블루 오션(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도 꼽힌다.

공연단원은 700여 명. 루마니아.러시아 등 40여 개국에서 온 재주꾼들이다. 유명 체조 선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휘젓고 다니는 인재발굴팀만 40여 명에 달한다. 슬럼가였던 몬트리올 북동쪽 생미셸 지구는 태양의 서커스 본부 '토후(Tohu)'가 들어서면서 세계 서커스의 메카로 탈바꿈했다. 기 라리베르테는 "의상 디자이너.건축가.엔지니어.조명예술가 등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관객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커스의 일상화

태양의 서커스가 탄생하던 80년대 중반, 유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전통적인 서커스에서 탈피해 동물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자크 랭(67)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서커스 뉴 트렌드'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는 "모든 무용은 서커스가 된다. 또한 모든 서커스는 무용이 된다"며 국립 서커스학교를 창설한다. 90년대 초 안무가 조셉 나즈(48)는 서커스를 예술로 끌어올린 인물. 곡예.현대무용.클래식을 뒤섞으며 서커스에 철학과 사색의 입김을 불어넣는다.

서커스 학교도 유럽과 캐나다에서 하나둘씩 만들어졌다. 보통 3년제인 이들 학교에선 공중곡예와 기계체조는 물론 연기.음악.무용.시나리오 등 종합예술을 모두 배울 수 있다. 한국의 외줄타기와 중국의 기예를 가르치기도 한다.

전문 학교뿐 아니라 보통 중.고교에서도 서커스는 특별활동 과목으로 배정돼 있다. 페리아 뮤지카 필립 드 코엥 예술감독은 "텀블링과 뜀뛰기 등은 청소년 체력 향상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예술적 감성도 함께 배울 수 있어 학생.학부모 모두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예술 장르의 파괴·통합

근대에 들어서 서커스가 쇠락한 배경엔 '극장 문화'와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공연 예술이 극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야외 공연 위주의 서커스는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무대 위 좌우 평면 공간만을 활용하는 실내 공연의 한계성은 역설적으로 입체화된 서커스가 폭발성을 갖는 촉매로 작용했다.

여기에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결합하면서 서커스는 최첨단 문화의 총아로 각광받게 된다. 공중에 매달린 세트가 땅에 떨어지고, 영상 멀티미디어와 레이저 조명은 관객에게 환상과 스릴을 동시에 제공한다.

또한 서커스는 퓨전이라는 코드를 쉽게 포용하는 장점이 있다. 연극적 스토리와 뮤지컬적인 흥겨움, 발레의 섬세함과 체조의 역동성, 마술의 판타지가 모두 녹아 있기 때문이다. LG 아트센터 정재왈 부장은 "최근의 서커스에선 인간 육체가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아름다움이 기존 예술과 충돌한다. 그 파열음은 아찔하고 중독성이 크다. 서커스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한다.

최민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내 새로 마련된 극장 용에서 13일까지 공연 중인 벨기에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은 '공중 발레'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브뤼셀 서커스 학교 출신의 곡예사 7명은 현대 무용을 따로 배워 무대에선 현란한 춤사위로 슬픔과 기쁨을 노래한다. 그리고 다시 봉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선 곡예를 선보인다. 땅과 하늘의 공간은 트렘폴린 공중 도약을 통해 서로 교감을 나눈다. 이때의 움직임은 '추락'과 '희망'을 상징한다. 무대 위엔 연기자 외에 연주자도 함께 오른다. 그들이 들려주는 아프리카.인도풍의 민속 음악과 재즈도 매혹적이다. 1544-5955.

■9일부터 13일까지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디아볼로'의 핵심은 세상을 지배하듯 무대 위에 군림하는 원이다. 출연진은 이 둥근 구조물을 중심으로 매달리거나 맴돌면서 신체의 확장을 시도한다. 연출가 자크 하임은 "모든 기술은 바퀴 회전에서부터 비롯된다. 원이 구조.기술을 의미한다면 무용수는 인간을 상징한다. 기술과 인간의 반복되는 충돌을 은유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95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해 큰 호평을 받았다. 자크 하임이 3년 전 태양의 서커스 'KA' 공연 연출팀에 합류하고, 'KA'의 원형이 '디아볼로'로 알려지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031-729-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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