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車 묘역밖서 10여분 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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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 기념식은 시위와 마찰로 얼룩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 대학생들의 시위로 식장에 지각 입장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상파 3개 TV방송이 행사를 생중계하는 와중이어서 행사가 지연되면서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어리둥절해하고 불안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의 정보 및 상황대응 능력 등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뒷문으로 출입한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로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5.18 기념식은 18분 가량 지연 개최됐다.

한총련 대학생 1천여명은 이날 오전 10시45분쯤부터 '특검 중단, 한.미 공조 파기, 6.15 민족공조 실현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기 위해 행사장인 국립 5.18묘역 진입을 시도했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盧대통령이 한반도의 전쟁 위협과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미국의 조치에 합의하는 등 친미 굴욕외교를 펼쳤다"면서 "한.미 공동성명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경찰 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학생들이 묘역 입구 정문을 점거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이 사태로 盧대통령 일행이 탑승한 차량들은 묘역에서 6㎞쯤 떨어진 광주시 북구 각화동 도동고개에서 대기하다 11시18분쯤 묘역 후문을 통해 식장에 입장했고, 폐막 후에도 후문으로 퇴장했다.

극심한 교통정체가 빚어지자 행사에 참석했던 일부 장관과 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은 걸어서 묘역 후문으로 빠져 나가기도 했다.

盧대통령은 오후 전남대 초청으로 이뤄진 특별강연 때도 전남대 총학생회 소속 대학생 1백여명이 강연장인 대강당 쪽을 향해 '굴욕적인 한.미 정상회담 반대'등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으며, 총학생회는 한.미 정상회담을 비난하는 방송을 했다.

◆우왕좌왕 경찰=경찰은 5.18묘역 입구 3거리 주변에 15개 중대 1천8백여명의 병력을 배치했으나 학생들의 기습시위를 막지 못했다.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 강제 해산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학생들이 대통령의 방미와 관련, 피켓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만을 믿고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17일 조선대에서 구체적 시위 계획을 토의한 뒤 이날 오전 8시부터 행사장 인근인 5.18 옛 묘역에 모였다.

행사 경비책임자인 김옥전 전남경찰청장은 청와대 김세옥 경호실장의 친동생이다. 공교롭게 형제가 이날 행사의 경비.경호 책임자였다. 이에 대해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경찰의 경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며 "현지 대응에 미흡한 점이 드러나면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원들 봉변=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 일행은 행사장으로 가던 중 시위 학생들이 갑자기 "서청원이다"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바람에 몸싸움이 벌어져 입고 있던 양복 단추가 떨어지는 등 곤욕을 치렀다. 徐전대표는 묘역참배가 어렵다고 판단해 발길을 돌렸다.

최병렬(한나라당)의원과 정동영.천정배.신기남.정균환.김옥두(이상 민주당).김원웅(개혁국민정당)의원 등은 출입구가 봉쇄되자 가드레일 담을 넘어 5.18 묘역을 빠져 나가기도 했다.

광주=구두훈.천창환.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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