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한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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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 마리의 개구리가 우유통 속에 빠졌다. 한 마리는 비관론자였다. 그는 아무리 자기가 발버둥쳐도 헤어날 길이 없다고 여기고 그냥 우유의 흐름에 몸을 맡긴채 흘러내려 가기로 했다.
또 한 마리의 개구리는 그러나 낙관주의자였다. 그는 힘껏 헤엄쳐 나갔다. 끝내 그는 우유를 버터로 만들어놓고 그 위에 뛰어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침 음식을 찾아 지나가던 농부의 그물 속이었다.

<엄벌에 앞서 애정을>
특히 우리네 경제가 이와 같은 두번째 개구리와 같지나 않을까 하고 사람들이 은근히 조바심을 하고 있을때에 엄청나게 무겁고 큰짐을 걸머지게 된 새 국무총리와 각료들을 축하해야 옳은것인지 아닌지를, 우리집의 작은 살림조차 아내에게 맡기고 있는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그래도 축하를 해드리는게 당연한 순서인 것 같다.
이른바 『병법칠서』 중에 「이위공문대」 라는게 있다. 당의 명장 이정이 대종의 질문에 응답해가며 병법을 논하고 제왕학을 강의한 책으로 상·중·하의 3권으로 되어있다. 손자 의「병법」 보다 나중에 나오고 따라서 내용이 새로우면서도 이상하게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책 중권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태종이 물었다.
『옛 병법책에 「관리체제를 엄하게 하면 병사들이 군주를 두려워하고 명령에 잘 따르고, 적을 무서워하지 않고 싸우게 된다」 고 적혀 있는데 과연 이는 옳은것일까』
『승패의 형세는 천차만별이겠지만 법률이나 형벌만으론 병사들을 싸우게하고 승리를 얻게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손자는 가로되 『「미처 부하가 친숙해지지 않아 잘 따르지 않고 있는 동안에 저지를 사소한 과실조차 용서하지 않고 벌을 준다면 부하들이 심복하지 않는다. 거꾸로 너무 친숙해져서 과실이 있어도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질서가 문란해진다」 고 했습니다.

<일체감 승화가 과제>
제 생각으로는 이 손자의 말은 부하에 대하여는 우선 애정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고 그런 연후에 과실이 있으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에 애정없이 그냥 엄하게만 관리하려 한다면 잘 될리가 없습니다.』
태종이 되물었다.
『하나 서경에는 「권위가 애정에 좌우되지 않는다면 잘 되고 권위가 애정에 좌우된다면 실패한다」 고 적혀있지 않은가』
여기 대하여 이위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뭣 보다도 먼저 애정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만들어내고 그 다음에 잘못이 있을때에 엄벌에 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순서를 뒤집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엄하게 다스리고, 그 다음에 애정을 가지고 접하려한다 해도 아무 효과는 없습니다…』
이위는 여기서 병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국민과 정부사이가 신뢰로 철썩같이 밀착되어 있을 때에는 누가 따르라 하지 않아도 국민은 정부를 따른다. 국민과 정부의 이해가 똑같다고 느낄수 있을 때에는 국민은 자진해서 정부와 운명을 같이 하려든다.
KAL기 격추사건이나 버마의 참극때 보여준 온 국민의 결속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모처럼의 일체감을 어떻게 실체있는 것으로 다져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 새정부의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정부는 국민위에서 국민을 이끌어 가는게 아니라 항상 국민의 편에서 국민과 함께 걸어나가야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그렇지를 못하고 있다는 오해를 자칫 받아왔다. 정부는 또 국민에게 기회가 있을때마다 동고동락을 말해왔다.
옥편을 잘못 찾아봤는지는 몰라도 맹자가 당초에 왕이 백성과 함께 락을 나눈다는 뜻으론 「동락」 이란 말을 썼을 때에 그는 「동고」 를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옥편에도 「동고」 란 말풀이는 없다. 동락이 있으면 당연히 동고가 따른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틀림없이 동락이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에는 자연히 동고도 즐거이 자진해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에 만연되어있는 불신풍조만을 개탄한다. 그러나 정부의 「선의」 와 노력을 「오해」 하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만든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르고 싶어한다. 모두가 한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불신의 씨 제거토록>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작금에 일어났던 각종 금융사건들이 모두 체내에 깊이 파고든 병균에서 나온 증세로만 보인다.
따라서 병균을 도려내는 큰 수술이 필요한게 아닌가고 염려한다. 그러나 정부는 가벼운 외상정도로 여기고 항생연고만 발라도 된다고 처방을 내린다.
그리고 의사를 믿으라고 이른다, 불신의 씨와 불신풍조와 어느 것이 먼저냐는 것은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그렇게 사람들은 여기고있다.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정부 역시 잘못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을 시인하고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렸다.
「디어드·루스벨트」 는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직후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1백개 중에서 75개까지만 옳다면 그게 나로서 바랄 수 있는 최고다』 라고 측근에게 실토하였다.
아무리 퓌어난 사람이라도 그릇되거나 불충분한 정보에 의해 얼마든지 잘못 판단할 수가 있다. 편견 또는 선입견에 좌우되는 수도 있으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의 급변에 냉정하게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래서 보다 뛰어난 사람은 남의 말을 잘 경청한다. 『말한다는 것은 지식의 영역에 속하며 듣는다는 것은 지혜의 영역에 속한다』 고 미국 최고의 법관이라 존경받던 「올리버·웬델·훔즈」가 말한 적도 있다. 물론 덮어놓고 사람만 많이 만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지혜와 용기 보일때>
듣기 싫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겸허함이 있어야 하고, 정책의 잘 잘못을 가려낼줄 아는 지혜, 과오를 시인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양심과 용기가 있어야한다. 「착실한 정치」 란 이런데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은 국시뿐이다. 그 테두리 안에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게 정책이며, 민의와 민식에 따라 슬기있게 수정해 나가는데 정치의 묘도 있다.
물러난 전 총리는 「동네북」 이란 말을 남겼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재상의 자리를 권위와 존경의 자리로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고 나는 보고싶다. 또 이런 각오로 총리를 비롯한 각 각료들이 일할 때 비로소 정부도 국민의 신뢰를 받게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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