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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받으면 복주머니에 넣는 까닭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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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묵은 해의 모든 일을 잊고 새롭게 한 해를 출발하는 첫 날이다. 시작을 중시하는 전통에 따라 설날은 몸과 마음을 삼가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맞이해 왔다. 예로부터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지 않고 새해를 맞으면 그 해에 나쁜 일이 많이 생긴다고 믿었다. 설날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새해 첫 인사’인 세배다.

조상에 대한 새해 인사가 차례(茶禮)고, 살아 계시는 집안 어른들과 마을 어른들에 대한 새해 인사가 세배(歲拜)다. 전통사회에서는 세배를 하면 덕담(德談)을 주고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덕담 관련 자료를 보면 신년 덕담은 ‘바라는 바’가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아주머님(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오래된 병)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이 고모인 숙휘공주에게 보낸 새해 덕담 편지에서.

"새해맞이는 네가 괴로이 앓던 병을 다 떨쳐 버리니, 기운이 강건하여 병이 없고, 인상이와 태상이 등은 이마에 마마 반점이 돋아 붉은 팥 한 쌍을 그린 듯이 마마(천연두)를 잘 치르고 80세까지 산다고 하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으리.” -제17대 왕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딸 숙휘공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해부터는 무병장수하고 재채기 한 번도 아니하고 푸르던 것도 없고 숨도 무궁히 평안하여 달음질하고 날래게 뛰어다니며 잘 지낸다 하니 헤아릴 수 없이 치하한다” -제18대 왕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가 딸 명안공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해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신하와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워 조금도 흠이 없이 지낼 것이니 기쁩니다” -헌종과 철종 때 순원왕후가 재종(6촌)동생인 김흥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마치 병이 다 나은 것처럼 "숙병이 쾌차했다 하니 기쁘다”고 표현했고, 인선왕후는 딸이 "마마를 잘 치렀고, 80세까지 산다”고 했다. 명성왕후도 딸이 "잘 지낸다고 하니”라 하고, 순원왕후는 "흠이 없이 지낼 것이니”라며 소망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말했다. 이처럼 새해 덕담은 소망을 단정적이고 완료된 것처럼 표현했다. 모두 상대방을 존중하는 뜻에서였다. 요즘 흔히 쓰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부자 되세요”와 명령형 인사말은 전통적으로 쓰지 않았다.

대신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신다고 하니 축하드립니다” "새해에 하시는 일 모두 잘 된다니 축하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설날이라 하면 온통 세뱃돈에만 관심이 많은 듯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편찬한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에서 세뱃돈의 역사와 의미를 다룬 부분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에는 정초에 문안비(問安婢)라고 하는 자기 집 여종을 시켜서 사돈 등 일가친척들을 찾아 뵙도록 했다. 문안비를 맞은 집에서는 세뱃돈과 세배상을 대접했다. 어른에게는 떡국이나 술을 내놓는 것이 보통의 예절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술을 주지 않고 약간의 돈이나 떡과 과실을 준다. 세뱃돈은 ‘복돈’이라고 하여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많은 돈을 주지 않고 조금 주더라도 많이 받는 것으로 알아야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의 마을제사에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려 공민왕의 딸인 서낭신이 청량산 꼭대기의 산성마을에 산신으로 좌정해 있는 공민왕신에게 ‘세배를 드리러’ 갔다. 풍물패가 서낭대를 앞세워 공민왕당에 가면 산성마을주민들이 술과 음식을 내어 대접하고, 딸이 세배하러 왔다면서 세뱃돈을 주기도 했다. 요즘은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정초에 제당을 찾아 배례한 뒤 돈을 놓고 간다. 이 돈을 ‘세뱃돈’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리예스 지역에서는 대소가의 친척들을 나이 순서에 따라 방문하고 서로 껴안고 덕담을 나눈다. 아이들에게는 형편에 따라 1프랑이나 2프랑 또는 5프랑짜리 동전을 세뱃돈으로 준다.”

자료를 보면 세뱃돈은 조선시대에 이미 있었고, 심지어는 마을 지키는 신(神)들끼리도 세뱃돈을 주었다. ‘복돈’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중요했기에 많은 돈을 주지는 않았다.

세뱃돈은 중국·일본·베트남 등에서도 고루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설날에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색 봉투인 ‘훙바오(紅包)’에 세뱃돈을 넣어 준다. 일본은 양력을 세지만 ‘오토시다마(お年玉)’라는 세뱃돈 풍속이 있다. 에도시대에 도시에서만 행해지다가 고도 경제 성장시대인 60년대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퍼졌다. 역시 봉투에 넣어 준다. 베트남에서도 빨간 봉투에 새 돈으로 소액 지폐를 넣어주는‘리시(Tien Li Xi)’라는 관습이 있다. 베트남에서는 세배는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낸 뒤 집안의 어른들에게 먼저 세배하고, 일가친척에게는 성묘 후 세배한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고, 경제권이 가장에게 집중되었던 전통사회에서는 세배하러 오는 손님에게 세찬(음식)과 세주(술)을 내주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명절음식 대접에서 세뱃돈 주는 것으로 풍습이 바뀌었다. 1960년대 화폐개혁과 70~80년대 경제발전과 더불어 세뱃돈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세뱃돈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직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손아래 자손과 연로하신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뱃돈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복돈’이라는 상징이 중요하다. 그러니 적게 받아도 많이 받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세뱃돈을 받으면 복주머니에 넣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경제적 가치만 따지는 세뱃돈이 아닌 의미와 상징을 아는 것이 더 복 받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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