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화 '신과 함께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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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자 마음이 개운해졌다.한바탕 울며 밤을 지샌 다음 날 아침의 카타르시스가 생각났다.오랫만에 잡티 없는 작품을 봐서 그런가.

대중성이 높은 코미디 영화가 그런 느낌을 준 것은 의외였다.2002년에 만든 독일 영화 ‘신과 함께 가라’는 신선한 발상과 장중한 음악,그리고 배우들의 깔끔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반전의 연속이다. 앞부분은 서양 중세의 가톨릭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심오한 예술 영화 같은 분위기다. 원장이 죽자 남은 수도사 세 명은 교단의 교리가 담긴 고서(古書)를 들고 단 하나 남은 같은 형제 수도원을 찾아 이탈리아로 먼 길을 떠나는 내용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숀 코너리가 주연한 '장미의 이름'을 연상케 한다. 세 수도사가 화음을 맞춰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장면에선 전율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이 로드무비는 금세 장르가 바뀐다. 숲의 끝에서 철로가 나오고 함께 길을 떠난 염소를 열차에 잃고, 젊은 여성이 모는 자동차에 거의 치일 뻔 한다. 맙소사, 알고보니 이 영화의 배경은 중세가 아니고 현재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수도원에서 살던 세 수도사는 세상 속으로 나온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중세에서 시간 터널을 지나 현대로 온 기사와 하인을 다룬 프랑스 코미디 영화 '비지터'와 일맥상통한다. 그렇지만 그 영화처럼 요란스럽진 않다. 코미디 영화임에도 진지한 대사와 장면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세 수도사와 한 여자가 이 로드무비를 이끈다. 재혼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농부 출신 타실로, 고서적 앞에 꼼짝 못하는 지식인 벤노,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가 바깥 세상, 특히 여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아르보가 그들이다. 여기에 순수한 아르보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여기자 키아라가 가세한다.

수도사들은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 신학교 도서관의 방대한 고서적, 젊은 여성 때문에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한번씩 제동을 걸게 된다. 이들은 과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르보 역을 맡은 다니엘 브륄의 매력이 돋보인다. 올해 스물 다섯인데 동독 시절의 향수를 다룬 신작 코미디 영화 '굿모닝 레닌'에서 주연을 맡아 독일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키아라 역의 키아라 쇼라스는 이탈리아인과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연기와 외국어에 능해 앞으로 여러 나라의 영화에서 관객과 만날 것 같다.

영화는 현대인의 빠른 삶과 수도사의 느릿한 중세적 삶을 대조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어떤 것이 좋은지는 끝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독일 서남부 슈바르츠 발트(검은 숲이라는 뜻의 울창한 숲지대)가 주요 배경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TV문학관'이나 '베스트 극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케일은 작지만 분위기는 매력적이다.

채인택 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19일자 S7면에 실린 영화 '신과 함께 하다'는 '신과 함께 가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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