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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서촌 체부동교회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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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촌 체부동교회 [사진 이장현 씨 제공 http://blog.naver.com/brahms74]

95년 역사의 서울 서촌 체부동성결교회가 기로에 섰다. 변화와 보존, 두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경복궁 마을의 오늘을 체부동교회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직선거리로 80m. 요즘 뜨고 있는 동네, 서촌에는 ‘조선시대 중인 문화’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체부동교회(대지 467㎡·142평)는 4대문 안에서 가장 보존가치가 높은 벽돌식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1920년 기도실로 시작해 31년 교인들의 모금으로 신축됐다.

 교회는 건축사뿐만 아니라 역사·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다. 시대별 벽돌쌓기 방식이 한 건물에 함께 존재하는, 보기 드문 사례다. 내셔널트러스트 김원 공동대표는 “양반의 마을 북촌이었다면 뾰족한 십자가탑이 세워지진 못했을 것”이라며 “중인의 개방적인 문화가 수백 년간 축적된 서촌이기에 왕궁 옆에 교회가 들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회 측은 지난해 여름 공공 감정가(26억원)에 건물을 매각하겠다고 서울시에 제안했다. 서촌이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유동인구가 늘었으나 정작 이 지역을 지탱하던 주민 수는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40억원 안팎)와의 큰 차이에도 공공매각을 선택한 건 보존이란 가치가 돈보다 중요하다는 시민의식의 발로였다.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탓에 서울시가 답을 미루는 사이 한 중국인이 50억원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해왔다. 교회의 발전위원회 는 지난 2일 이 사안을 논의했다. 공공매각을 주장하던 쪽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염희승 담임목사는 “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것은 경복궁 인근 마을 서촌·북촌·삼청동 모두의 현실이기도 하다.

변화·보존 기로에 선 체부동교회의 서촌

서울 서촌 옥인길(종로구 누하동)의 오래된 세탁소 만부크리닝은 2013년 11월 문을 닫았다. [사진 김한울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사무국장 제공]

경기대 안창모(건축학) 교수는 지난해 서울시의 ‘역사 도심 관리’를 자문하기 위해 서울 서촌의 체부동성결교회를 수차례 찾았다. 먼저 안 교수의 눈에 띈 건 붉은 벽돌이었다. 기도실이 1931년 교회로 건축되면서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식 벽돌쌓기 ’ 방식이 쓰였다. 해방 후엔 교회가 증축되면서 영미권의 영향으로 ‘영국식 쌓기 ’가 활용됐다. 이후 개·보수 과정에선 ‘길이쌓기 ’로 공사를 했다. 지금은 창문이 된 ‘작은 출입구’도 교회의 역사를 보여준다. 남녀가 유별했던 1900년대 초반 여성들은 쪽문으로 교회를 드나들었다.

 체부동교회는 조선 말기 중인들이 서구 문물을 직수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안 교수는 “일제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조선이 직접 근대를 만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교회의 가치를 평가했다.

 이렇게 가치 있는 체부동교회가 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걸까. 서촌에서 꽃집을 운영 중인 한철구(45)씨는 “손님만 많아지고 주인(주민)은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성동계곡으로 이어지는 옥인길에 있는 지금 상가들 중 영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은 곳이 드물다. 오래된 목욕탕·세탁소·서점이 카페와 식당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임대료와 권리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옛날 방식으로 동네 사람을 상대하던 가게들은 고사하고 있다.

 동네 사람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체부동교회의 위기도 오래된 가게의 퇴출과 맥락을 같이한다. 염희승 담임목사는 “수많은 젊은 연인이 손 잡고 이곳을 찾고 있지만 이곳엔 뛰노는 아이가 없다”며 “2~3년 전부터는 교회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서촌을 보존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은 오래된 일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옥 선언’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박원순 시장이 준비하고 있는 ‘역사도심 재생계획’은 경복궁 인근 마을을 중점 대상으로 한다. 체부동교회는 역사도심 재생을 위한 중점 관리 대상 건축물 210동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교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서울시의 누구도 이 같은 사실을 주민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경복궁 마을을 관리하는 인력과 부서는 크게 늘었다. 체부동교회의 공공매각과 관련된 시의 부서는 최소 4곳이다. 주택건축국 한옥관리과, 도시재생본부 역사도심재생과, 문화체육관광본부 문화재과·문화정책과 등이다. 교회가 공공매입 의사를 시에 전달한 시점은 지난해 7월. 시의 실무자는 탁상감정가(상권을 고려하지 않은 매매가)로 26억원을 전달했다. 교회는 손해를 보더라도 서울시에 팔고 싶다는 의견을 재차 전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염 목사는 “전문화·세분화된 조직이 오히려 결정을 늦추는 관료제의 역설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교회(대지 467㎡·142평)의 시가에 대해선 몇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태경파트너스 박대범 본부장은 “도보 1~2분 거리의 대로는 평(3·3㎡)당 6000만원, 골목 안은 3000만원이다. 하지만 개발제한구역이어서 평당 3000만원 이하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서촌은 북촌·삼청동과 마찬가지로 최근 15년간 10배 이상 땅값이 뛰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 장영석 사무국장은 “누가 서울시장이 돼도 서촌의 보존은 강조되겠지만 역설적으로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중개업자는 “50억원을 제시한 중국인의 판단이 몇 년 후엔 혜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민간단체인 아름지기와 내셔널트러스트는 ‘민간과 공공의 협력’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내셔널트러스트 김금호 사무국장은 “서울시와 민간이 반반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매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올 6월부터 시행되는 ‘한옥 등 건축자산 진행에 관한 법률’은 민간이 보존을 위해 자산을 매입할 경우 공공기관이 이를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페인·이탈리아처럼 오래된 건물을 공공센터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있다. 종로구 측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거점으로 체부동교회 건물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서울시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글=강인식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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