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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어음」이상의 수법은 없어…|「영동개발진흥」사건수사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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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편타」수법 동원
○…이번 사건은 이·장사건이나 명성 사건때 보다 그 수법이 훨씬 지능적이라는 것이 수사관계자들의 평.
이·장사건 때는 피해기업과 직접 접촌, 대여해 주고 대여액의 2배에 가까운 견질어음을 받아 사채시장 등에서 할인하는 수법을 썼던 것.
명성사건의 경우는 이보다 좀더 지능화돼 김동겸대리가 「예금주」에게 수기통장을 만들어주고 은행에서 바로 부정 인출해 버렸다.
그러나 「영동」사건으로 드러난 조흥은행 중앙지점의 금융부정은 그 수법이 더욱 고도화돼 잔고부족인 때는 지급 제시된 어음에 대해 현금으로 지급해 주고 당좌수표로 바꿔치기해 전표처리를 했고 「편타」수법까지 동원했다
한 수사검사는 『이 사건으로 이들의 수법이 들통났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떤 고단수 방법이 등장할지 모르겠다』 고 우려.
○…이행장은 검찰에 연행되자 이미 사태가 기울었다는 사실을 간파한 듯 순순히 시인하더라는 것.
지난해 이·장사건 때도 상업은행직원들은 서로 모든 책임을 자기혼자 떠맡으려한 반면 조흥은행은 범행을 상하간에 서로 떠밀려해 대조를 이뤘던 것처럼 이번에도 지점장들은 행장에게 책임을 미뤘다는 얘기.
수사관계자들은 이를 두고『조흥은행은 은행장이 다른 은행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냐』 고 나름대로 풀이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배후수사에서 항간에 H씨등 관련설을 추궁했으나 전혀 사실과 다르고 이들의 범행이 단순한 고객관계에서 뇌물로 연결돼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승진코스는 교도소>
○…이번 사건은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이·장사건 때 구속된 임재수전행장의 뒤를 이은 이헌승행장이 구속되자 『은행장의 송진코스는 교도소』라는 말과 은행장자리는 「퐁당」자리란 말이 생겼고 은행창구 사건중 가장 안전한곳은 역시 『돈 들고 튀는 것이 제일』 이란 냉소적 유행어도 나왔다.
탄허스님이 입적하기 전 만났었다는 한 검찰 관계자는 『상서로운 갑자원년(84년)을 맞기 위해 자정이 있을 것』 이란 탄허의 예언을 빌어 이번 사건을 포함한 일련의 사건들을 설명했다.

<사채시장서 인기>
○…영동은 동원자금의 9할을 사채시장에서의 어음할인으로, 나머지 1할을 단자나 은행 등을 통해 조달해왔는데 이·장사건 때의 할인을 3%의 절반밖에 안 되는 월 .1.7%로 3개월 할인 방식을 썼는데도 은행의「지급보증」덕에 현금과 다름없어 사채시장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것.
특히 영동어음할인을 거의 전담한 쌍두마차 사채업자 이재직씨와 윤문섭씨(수배중) 의 경우 문제가 된 1천10억원중 이씨가 4백38억원, 윤씨가 4백30여억원을 할인해 주면서 0.05%를 때에 가만히 앉아 20여억원 씩을 번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달아난 윤씨는 수사초기에는 이씨의 하수인에 불과한·인물로 알려졌으나 수사결과 이씨와 대등한 영동의 돈줄임이 밝혀졌다.
검찰은 윤씨와 직접 거래한 여비서들마저도「윤선생」이외에 정확한 이틈이나 주소 등을 몰라 신원및 소재파악에 애를 먹었고 이를 가까스로 밝혀냈을 때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는 것.
이씨는 67년 서울 D고교생물교사와 M미술학원원장으로 있다가 지난해 10월 사채중개인의 대부격인 장인 김모씨가 사망하자 유업(?)을 물려받아 사채 시장서는「이선생님」으로 통했다.
이씨는 다동의 4층 빌딩 등 서울시내에 빌딩만도 2동이나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영동 측은 부정한 방법으로 마련한 자금중 절반에 이르는 4백억원을 경기도광주·강남일대의 땅을 구입하는 등 부동산투기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져 용서받자못할 짓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사업능력도 없을뿐더러 생산적인 사업은 생각지도 않아 더욱 파렴치 하더라고 한 마디.

<여비서 동분서주>
○…검찰의 수사결과 이번 사건이 터지기 직전 한달여 동안 가장 바빴던 사람은 이회장의 여비서들.
이들은 중앙지점과 타은행 사이를 오가며 일시에 창구로 몰린 어음을 해결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전용 승용차(?)」를 타고 동분서주하느라 이양은 구두만 5켤레 바꾸었다는 소문. 만약 이양이 법으로 쓰러졌다면 벌써 부도나고 말았을 것이라는 후문.
이들중 이양은 B년 이회장이 그랜드호텔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비서로 일하며 당사 조흥은행 남대문지점장으로 있던 고준호씨와 이회장과의 경영대금대출등 주로 외근을 했으며 박양은 이회장의 먼친척으로 사무정리를 맡아 왔다는 것.
이들은 어린 이유로 월급 20만원 외에 입막음으로 40만원씩을 더 받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박양의 경우 수입이 좋아 결혼 후에도 계속 이회장을 도왔다는 것.

<어음소지자 40명>
○…현재까지 밝혀진 사채업자 (어음소지자)들의 명단은 40명.
그러나 이는 2명의 사채중개인중 이재식씨만을 신병확보한데다 이씨의 하수인 10명중에서도 7명이 달아나 버려 겨우 3명으로부터 알아낸 숫자이므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한수사검사는 사채업자들이 마치 「게」와 같아 돈 냄새를 찾아 어슬렁거리다가도 수상한 낌새만 채면 잽싸게 굴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번번이 수사에 애를 먹는다고 투덜.
사채업자중엔 명성때 관련됐던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명단이 밝혀진 40명중에서도 6영이 명성사건과 겹치기로 관련됐다는 것.
한편 이들은 어음유통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이·장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상습·전문적으로 어음할인을 해줬다면 단기금융업법에 저촉이 되나 아직 처벌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18명 구속 신기록>
○…이번「영동」사건은 이행장등 은행원 18명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사법사상 또다른 신기록을 세우기도.
지난해 이·장사건 때 임재수 조흥은행장과 공덕동상업은행장등 은행원 6명이 구속된 것에 비하면 무려 3배나 되는 셈.
한 수사관계자는 『상호견제와 균형을 취하도록 되어있는 은행업무의 속성 때문에 은행원 혼자서 해먹을 수 있는 방법은 창구에서 돈을 들고 튀는 것 뿐이라 어차피 공모해야 범행이 가능하다』 면서 『조흥은행 중앙지점의 경우 3년6개월여 동안이란 장기간에 걸쳐 범행이 이루어져 이같은 기록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

<어음액수 비밀기재>
○…영동측과 신한측은 모두 어음발행액수를 별도의 비밀장부를 만들어 기재해 왔었다는 것.
신한측은 이 장부를 검찰에 고스란히 압수 당해 비록 손씨가 해외 도피했어도 범행규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영동의 경우 이·곽씨 모자가 도주직전 모두 태워 버려 수사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
이회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23일 밤부터 두 여비서를 동원, 장부일체를 끄집어내 비밀장부 등 불리한 증거가 될만한 서류를 분류한 뒤 반도 유드호스텔 소각장에서 운전기사를 시켜 소각케 했다고 진술했다.

<이·장때 80억 물려>
○…영동개발진전이 결정적으로 자금압박을 받게된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이·장사건 때 한신공영에 어음으로 물린 27억원과 추징금 53억여원등 80억여원의 손해를 본데다 지난6월 구속된 태원건설대표 유모씨에게 또다시 1백70여억원을 물렸기 때문인 것으로 밖혀 졌다.
이회장은 검찰에서 『이·장사건 때 손해본 80여억원을 벌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유씨에게 속아 l백70억원을 투자, 또 다시 손해를 보게돼 심한 자금의 압박을 받게 됐다』 고 실토.
더욱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명성사건이 터지면서 사채시장에서의 어음할인이 어렵게되고 발행된 문제의 어음들은 일시에 창구로 물려들어 걷잡을 수 없었다. 이당시 이택구지점장은 편타처리액수가 많다는 본점의 지적이 있어 부정지급보증어음으로 편타처리액수를 제로 상태로 만들어 놨었으나 워낙 많은 액수의 어음이 돌리는 바람에 또다시 편타방칙으로 변칙결제, 3개월여만에 4백71억원으로 불어나게 했다.
이회장은 「가족들의 적금까지 모두 찾아 막아보려 했으나 이미 버틸 수가 없었다』 고 술회.

<「당좌」특성을 이용>
○…조흥은행 중앙지점이「영동」의 잔고부족 때문에 타인대(맞교환)처리한 수법은 당좌수표의 특성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었다는 것.
부정지급보증어음에 대해 돈을 내어준 뒤 당일 부족금을 메우기 위해 하루가 지나야 결제되는 타은행 발행 「영동」의 당좌수표를 자기앞수표나 현금으로 받은 것처럼 당일 결재해 발등의 불을 껐다는 것이 수사관계자들의 설명.
다음날 부족 분은 전날 것과 합친 금액만큼의「영동」당좌수표를 끌어다 하루를 연장시키는 방법으로 범행이 드러날 때까지 모두 4백71억원을 부정 결제해 왔다는 것이다.

<오백만원 팁 뿌려>
○…이회장의 자금동원능력이나 곽씨 형제들의 씀씀이 등으로 항간에는 이들이『자유당때 실력자인 모씨의 아들이며 H씨가 배후세력』 이란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았으나 수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 형제는 강남일대 고급 룸살룽 등에 드나들며 마음이 내킬 때면 수백만원을 뿌리며 당일 술집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는 것.
한때는 러일전쟁때 울릉도 근해에 금괴을 싣고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소련군함 인양에 3억원을 투자하는 등 위세를 부려 강남서 부동산으로 재벌이 된 K씨, L씨 등과 함께 새칭 『영동 3재벌』 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것.
검찰관계자는 시중에 나들던 H씨 등 배후설에 대해 「그 사람들이 약방의 감초냐』 며 일축.
○…이회장은 범행동기에 대해 『지난 80년 경기도 부평에 아파트를 지였다가 분양이 안돼 대우그룹사원아파트로 헐값에 팔아 넘기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보았으며 79년 온양재일 호텔을 지을 때도 출혈이 커 고지점장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었다』 고 실토.

<이젠 속 후련하다>
○…검찰은 수사하는 동안 고령인 이복례회장의 건강문제에 가장 신경이 쓰였다고.
「이회장의 경우 은행원들에의 뇌물공여 등 이번 부정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인데 64세의 고령인에다 심장법과 당뇨병 등을 앓고 있어 백련암에서 압송할 때부터 수사가 끝날 때까지 보물단지 모시듯 했다』 고.
이씨는 수사 받는 도중 졸도 당뇨병 약을 복용했으며 식사도 설렁탕·백반 등 맵고 짜지 않은 음식만을 골라 했다는 것.
이회장은 또 불교신도회 이사로서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대로 아침에 일어나 수사관이 찾아 오거나 수사를 마치고 나갈 때는 반드시 불교식으로 합장인사를 했다고 한다.
이회장은 「최근 들어 하루 12억∼18억원씩 어음이 돌아올 때는 죽고싶은 심정 이였다』 면서 「터지고 나니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고 담당한 심경을 털어놓기까지 했다는 것.
수사관들은 명성사건의 김동겸대리를 비롯, 이번 사건의 다른 행원들 모두의 공통된 진술은 『터지니 후련하다』 였다 면서 죄짓고는 못 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고 쓴 웃음.
○…미국으로 도피한 손창선 신한 주철대표와 박종기차장·곽경배씨에 대해 검찰이 수사협조를 의뢰했으나 당초예상대로 미측이 적극적인·반응을 보이지 않자 난감한 표정.
미국 측은 외부부를 통해『이들이 갖고있는 상용여권 시효인 6개월이 지나면 기간을 더 연장시켜 주지 않겠다』 고만 알려왔다는 것.
한 검찰관계자들『미국이 이들을 붙잡는다하더라도 특별한 위해 사범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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