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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소통’ 없는 정치는 가망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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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동익 언론인
·전 정무장관

가끔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갑자기 바둑을 함께 두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인터넷 바둑을 두다 보니 사람과 마주앉아 바둑 두는 게 싫어졌다는 것이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대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손으로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도 한다. “이제 졌다고 손을 들지….” “바둑이 좀 줄었어, 치수를 고치는 게 어때?” “천만의 말씀…”이라고 서로 중얼댄다.

 사람과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은 인간성 상실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바둑을 두는 게 좋다면 사람의 기계화다. 그것은 삭막한 얘기다.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화이고 타협이다. 타협은 소통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소통은 무엇인가. 만나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경청하고 반론하고 양보하고… 그래서 웃으며 뜻을 모으는 것이다. 얼굴을 보고 웃으며 승패를 수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증세와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세율은 철칙이 아니라 가변적이라는 것, 복지는 클수록 좋지만 형편에 맞아야 한다는 것쯤은 재정전문가 아닌 사람도 알고 있다. 한쪽이 세율을 올리자면 어느 세율을 얼마나 올리느냐를 의논하면 좋을 것이다. 어느 것을 조금 올리고 어느 것을 조금 낮추는 방도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에서는 담뱃값 인상도 증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른 담뱃값도 그 값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싸다. 어느 계층에게만 부담을 준다는 주장을 앞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또 어느 한쪽에서는 세율을 올리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일단 올려보고 경쟁력 저하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다시 조정하면 될 일을.

 그런데 이상한 일은 증세론이나 복지유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절대적 정의이고 불변의 원칙인 것처럼 말한다. 극단주의와 독선을 배격하고 점진주의와 타협으로 가는 유연성이 민주주의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이나 담화를 들어 보면 대단히 논리적이다. 그러나 누군가 지적했듯이 박 대통령의 원칙론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 감동을 주지 못할까. 원칙론은 옳은 경우가 많지만 훈훈하지 못하고 삭막하기 때문이다.

 여야 대표나 원내대표가 악수하는 사진을 가끔 볼 수 있다. 그 후에 나오는 보도는 양측의 평행선이다. 알맹이의 타협은 없고 절차의 절충뿐이다. 진정한 소통 없이 인터넷 바둑을 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들은 이제 그런 사진에 싫증을 낼지 모른다.

 정치권이나 정부 고위층이 가끔 도시락을 들면서 회의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경청과 토론은 없이 원칙론만 얘기하는 회동이라면 밥을 먹든 차를 마시든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이 비서진이나 장관들과 만날 때 박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참석자 발언은 나오는 적이 없다. 메모만 하는 모습뿐이다. 혹시 회의가 아니라 지시를 하달받는 모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원경(李源京) 문공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언론 정책을 놓고 격론을 벌이다가 다음날 사표를 내고 나온 적이 있다. 요즘 국무회의나 장관 모임에서 그런 격론이 있었다는 얘기를 누가 과장해서 전하더라도 한번쯤 들어 봤으면 싶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커티삭’이라는 위스키를 즐겨 마셨다. 그 양주를 한때 레이건 위스키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모습을 국민들은 흔히 접할 수 있었다. 농민들과도 마시고 요인들과도 마셨다. 그런 자리에서는 일방적 지시나 원칙론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국민들은 그런 모습을 통해 소통의 정치, 지도자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요즘도 막걸리 집에서는 “이 막걸리가 박 대통령이 즐겨 마시던 거야”라는 얘기를 간혹 들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양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어떤 차를 좋아하고 어떤 후식을 누구와 즐겨 나누었다는 얘기는 듣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형제·친척들의 청와대 출입에도 엄격하다.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가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이 가족과 엄격히 선을 긋고 고독한 길을 택했을까. 한편으론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인터넷 바둑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대통령과 국민, 여당과 야당, 국회와 청와대, 정부와 국민… 모두가 사람관계다.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좀 더 알고 싶다. 청와대의 사생활은 고독하지 않을까, 농담을 나누는 상대는 누구일까….

 박 대통령의 원칙론과 엄격성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벽이 높은 게 아닐까, 그래서 소통이 아쉽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승만 대통령이 간혹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얘기를 했을 때 참모와 보좌진의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그 옹호론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는 어려운 것일까. 그러나 해답은 있을 것이다. 인터넷 바둑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주앉는 정치가 그 해법일지도 모른다. 바로 ‘소통’이다.

김동익 언론인·전 정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