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더 받아 줄테니…" 매물 가로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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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박모(56)씨는 최근 송파구 잠실 저밀도지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사려다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계약 날짜에 맞춰 중개업소에 나갔더니 매도자가 집을 팔 생각이 없다며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朴씨에게 물건을 중개해준 중개업소 사장은 "갑자기 다른 중개업소가 집주인에게 5백만원 이상 더 받고 팔아주겠다고 연락하는 바람에 집주인이 계약 취소를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수도권 인기지역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는 아파트 매물을 차지하기 위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사철이 끝나 일반 아파트 매물이 적은 시기인 데다 정부가 투기지역 확대지정과 분양권 전매 금지 등 투기 억제정책을 잇따라 내놓자 일부 수도권지역 집주인들이 양도세 부담 혹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물을 거둬들여 물건이 크게 부족해진 때문이다.

실제 투기지역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단지는 평형마다 매물이 한두 개에 불과하고, 잠실 저밀도지구도 추가부담금 논란이 일고 있는 주공3단지를 제외한 나머지 재건축 아파트들도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매물이 귀하다 보니 어쩌다 적당한 가격의 매물이 등장하면 중개업소들이 여럿 달려든다.'값을 더 받아 줄테니 우리 중개업소를 통해서만 팔아라''중개 수수료를 깎아주겠다'고 유혹하는 중개업소도 있다.

중개업소는 중개업협회 전산망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매물을 공유하기 때문에 계약 중간이라도 매도자를 설득해 가로채기가 가능하다. 송파구 잠실동의 Y중개업소 사장은 "계약 날짜를 잡아놓고 안 나오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며 "현장에서 계약서를 쓰다가 매도인이 다른 중개인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별로 오르지 않은 강북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직장인 하모(36)씨는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를 사기로 하고 은행에서 계약금을 찾아오는 동안 돌연 집주인이 집을 안 팔겠다고 해서 당황한 일이 있다. 다른 중개업소가 매도자에게 지금보다 2백만원을 더 받아주겠으니 그 계약을 취소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상계동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이사철이 끝나 매물이 적기도 하지만 중개업소 수는 많은데 매매는 물론 전월세 거래조차 뜸한 지역이라 수요자가 선호할 만한 우량 물건은 중개업소 간의 경쟁이 붙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개업소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매매가를 올리는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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