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대양주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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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양주의 번영은 양의 등을 타고 찾아왔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이 말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두 나라가 누리고있는 자연의 축복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양의 등을 타고 번영>
호주의 풍요는 넓은 국토에 뿌리박고 있다. 한반도의 35배이자 알래스카를 뺀 미국 본토의 크기. 그 땅의 겉과 속이 포용하고 있는 무진장한 자원은『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질펀한 대지 위에는 밀·사탕수수·보리·쌀 등 곡식이 자라고, 1억4천만 마리의 양떼와 3천만 마리의 소떼가 구릉의 목초지를 누빈다.
또 그땅 아래에는 3백50억t의 철광석과 1천9백60억t의 석탄, 자유세계 매장량의 22%를 차지하는 우라늄(32만9천t), 천연가스(3천2백37만입방m), 석유(3억6백92만입방m)등 모든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의 자원이 묻혀있다.
이런 땅에 불과 1천5백만명의 인구가, 그것도 절반이 해안을 끼고 위치한 시드니 등 5대도시에 몰려 살고 있다니-.
인구 3백16만명에 면적이 한반도의 1.2배인 뉴질랜드 역시 자연의 혜택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 일찌기 영국의 해외농원으로 불렸던 이곳의 풍경은 한폭의 정돈된 그림과 같다. 산과 초목의 구릉, 가지런한 삼림, 그위를 물결처럼 누비는 양떼와 소떼 등 전 국토가 목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대양주는 평화롭고 풍족한 농업선진국이자 고도의 복지사회라는 느낌을 준다. 강대국과 멀리 떨어진 지정학적 유리함 때문에 전쟁의 공포를 모르고 국제사회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여유를 갖고있다.
기자가 방문한 기간 호주·뉴질랜드에서는 소련의 KAL기 격추 만행을 규탄하는 소리가 조야에 들끓고 있었다. 두나라 모두 한국정부에 위로의 전문을 보냈고 의회는 대소규탄결의문을 채택했다.
6·25때 참전했고 유엔총회 등에서는 항상 우리를 지지해준 호주·뉴질랜드는 핵심우방으로 정치적으로는 우리와 전혀 갈등이 없는 나라다.
그러나 2차 오일쇼크이후 극심한 불황을 겪고있는 데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원자재 의존도가 높아감에 따라 차츰 무역마찰이라는 새로운 쟁점이 등장하고 있다.

<치약·담배까지 수입>
호주·뉴질랜드는 모두 농산물·광물 등 1차산품이 수출의 70%이상을 차지하고있다.
또 국민총생산의 30%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인조섬유의 출현으로 양모수출이 늘지 않는다. 주 수출시장인 미·일·유럽 등이 불황이니 고기·치즈·버터는 적게 말리고 광물은 자꾸만 값이 떨어져간다. 반면 수입하는 기계류와 소비재 등 2차산품은 값이 오른다.
실로 더블펀치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틈에 74년에 1.6%이던 호주의 실업률이 11%(82년) 로 껑충 뛰었고 인플레율도 10.4%로 급등했다. 뉴질랜드도 실업률 7%, 인플레율 15%라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있다.
두 나라 다 국내공업력은 극히 부진하다. 선진농업에, 후진공업구조를 갖고 있다. 치약과 담배에서부터 자동차·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입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인구가 적고 국내시장이 좁아 공업투자가「규모의 이익」을 기하기 어려운데다 고임금 등으로 생산원가가 비싸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공업부진의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는 고관세와 수입제한으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때문에 공산품의 소비자가격은 대단히 비싸다.

<백호주의잔영 남아>
한국과의 마찰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작년에 호주로부터 석탄·육류·원모·철광석·원당 등 모두 9억l천3백만달러 어치를 사오고 대신 3억7백만달러 어치의 섬유류·타이어·신발·완구류 등을 팔아 3대1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금년 상반기의 역조폭은 오히려 4대1로 더 벌어졌다.
우리의 대 뉴질랜드 역조율도 2.8대1이다.
무역적자의 원인은 두 나라로부터의 원자재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한국수출상품에 대한 수입규제조치가 극심한데서 비롯한다. 한국제품의 거의 전부가 수입허가품목이거나 규제대상이라고 보면 틀림없고 호주가 특히 심하다.
그 결과 국내9개 종합상사가 모두 호주에 진출하고 있으나 수출실적은 저조한 편이며 오히려 자원개발 참여문제가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포철이 싱글턴 부근의 석탄개발에 13%를 투자하고 있으며 제일모직·대성탄좌·해태유업 등도 원자재합작투자에 나섰다.
뉴질랜드에는 전주제지가 이미 오래전 펄프공장에 13%를 투자했으며 오양수산 등이 어업관계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다.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한국은 그동안 상공장관회담을 열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호주측은 그들의 총무역수지가 적자라는 점을 들어 좀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무역적자라고 하지만 한국이 사가는 것은 원자재고 호주가 사는 것은 반완제품이 아니냐는게 그들의 방어논리다.
때문에 현지의 우리상사들은 우리의 원자재수입과 공산품수출을 연계시켜 강력 대응하자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현재 호주에는 1만여명이 넘는 교민이 있다. 이중 체류허가를 받은 교민은 7천5백여명이며 나머지는 불법입국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법적으로는 없어졌지만 백호주의의 잔영이 가시지 않은데다 이민 역사가 짧아 우리 교민들은 아직도 고전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전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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