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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허, 그 차로 쭈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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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해 초 10여년 간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보험설계사 일을 새로 시작한 우성용(42)씨는 전국 각지에 있는 고객과의 미팅을 위한 차량 이용이 부쩍 늘었다. 연비가 좋은 새 차를 구입할지 고민하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쏘나타 LPG차를 장기렌트하게 됐다. LPG차인 만큼 연비가 우수하다는 것과 초기 구입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기렌터카를 선택한 것이다. 번거로운 차량 관리도 렌터카 회사에서 알아서 해준다. 우씨는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차량 관리를 렌터카 회사에서 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일반적인 방식으로 차를 샀다면 LPG차량을 구입할 수 없었겠지만, 장기렌터카로는 가능하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라며 웃었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대신 1년 이상 장기 렌트하는 자동차 ‘장기 렌터족(族)’이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경기 불황의 영향이 자동차 소비 패턴까지 바꾼 것으로 본다. 경기가 위축되면서 직접적인 소유를 피하는 대신 경제적 효용을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해석이다. 소유에 대한 욕구가 유독 강한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상 강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이를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자동차 장기 렌터족의 증가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경기 불황이 자동차 소비패턴도 바꾼 듯

1년 이상 자동차를 빌리는 ‘장기 렌터족(族)’이 늘고 있다. 업계 1위인 kt금호렌터카의 경우 2009년 1543대였던 개인 장기 렌터카가 5년 만인 지난해엔 2만3822대로 15배 넘게 늘었다. [중앙포토]

 11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렌터카 업계 1위업체인 kt금호렌터카의 ‘차량 등록’자료에 따르면 2009년 말 1543대였던 개인 장기렌터카 보유대수가 지난해 말에는 2만3822대로 5년 만에 15배 넘게 급증했다. kt금호렌터카 측은 자동차를 장기렌트하면 자동차 관련 세금부터 정비, 보험 등 차량의 유지 관리까지 업체가 해결해주는 등 유리한 점이 많은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경제적인 혜택도 무시할 수 없다.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장기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차량 구입비와 보험료 등을 합쳐 직접 구입하는 것보다 5~10% 정도 더 저렴하게 차를 이용할 수 있다.

 감가상각 등에 대한 위험 회피도 가능하다. 신차를 구입할 경우 소비자가 그간 타던 차를 중고차로 팔려고 내놓았을 때 기대하는 만큼 찻값을 받을지 알 수 없지만, 장기 렌터카의 경우 중고차 매매에 따른 손실 부담을 렌터카 업체가 맡아주기 때문이다. 장기 렌터카로 이용하다가 마음에 들면 그 차를 그대로 인수하거나,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자유롭다.

 환경도 장기 렌터카에 더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2013년 3월부터 렌터카를 상징하는 ‘허’자 번호판 외에 ‘하’와 ‘호’등이 추가된 것이 그렇다. 또 렌터카 자체에 대한 인식 역시 과거와 달리 ‘성공한 대기업 임원들이 타는 차’등으로 변화한 것도 장기 렌터카 시장 성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계약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매월 내야 하는 렌트료 부담은 더 줄어든다. 때문에 대부분의 장기렌터카 고객은 3년~4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 kt금호렌터카의 개인 장기렌터카 이용 고객 중 절반이 넘는 56.3%가 4년 짜리 렌트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3년간 장기렌트 하겠다는 이는 전체 계약자 중 29.2%였다.

 같은 기간 법인들의 장기 렌터카 선택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09년 3만3065대였던 kt금호렌터카의 법인용 장기 렌터카는 지난해 말 현재 6만5994대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중소 법인들은 장기렌터카의 편의성에 주목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최권주(48)씨는 사업 확장에 따라 업무용 차량을 확대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신차 장기렌터카로 최근 차량 5대를 새로 계약했다. 그러면서 kt금호렌터카의 법인차량관리 서비스(FMS·Fleet Management System)를 옵션으로 선택했다. FMS는 업무용 차량의 차량·비용·배차관리는 물론 운행관련 통계분석까지 내줘 차량 운영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업무 용도외 이용까지 방지할 수 있다. 최씨는 “단순히 업무용 차량만을 렌탈 해 주는 것이 아닌 업무용 차량 운용 솔루션까지 함께 이용하게 돼 서비스에 만족한다”며 “차량을 렌트하는 업체 입장에선 관리 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인과 법인 부문 모두 장기렌터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kt금호렌터카의 매출에서 장기 렌터카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에는 8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kt금호렌터카의 경우 보유 차량의 79%선인 8만9816대가 법인과 개인용 장기 렌터카로 나간다. 장기 렌터카 비즈니스가 꾸준히 성장하면서 kt금호렌터카의 매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13년 8800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조700억원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당시 매출이 4090억원 선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매출이 2배나 커진 것이다.

 업계에선 최근 장기 렌트족 증가 추이를 자동차 시장 구조 변화의 시작으로 본다.

 긍정적인 면에선 차량 교체 주기를 단축할 수 있다. 차를 구입할 때마다 목돈이 들지 않는 만큼 자주 차를 바꿔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매월 75만원씩 렌트비를 내기로 하고 최근 그랜저(3.0 기준)를 3년간 장기렌탈한 직장인 진성민(40)씨는 “선납금 부담이 없고 언제든 바꿔탈 수 있어 집사람도 반기는 편”이라며 “불경기에 큰 돈이 묶이지 않으니 새 차가 나오면 또 골라탈 수 있을 것같다”고 말했다. 반면, 자동차 구입에 따른 세수가 줄어들고 보험업계와 자동차 액세서리 업계의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장기 렌터카 시장의 전망은 밝다. 국토해양부와 한국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차량 등록대수 대비 렌터카 비율은 한국이 전체 등록 자동차 중 2%(43만 여대)가 렌터카로 렌터카 선진국인 미국(7%)은 물론 이웃 일본(4.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계약 길수록 부담 줄어 … 4년짜리가 56%

 황창석 신영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렌터카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6.3%로 내수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업체들마다 발빠르게 이런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차를 구입하는 젊은이가 줄어든다는 점에 착안, 청년들의 운전면허 취득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장기렌트를 비롯한 카셰어링(car sharing) 산업이 성장하면서 해외 렌터카 업체와 완성차 업체들도 카셰어링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선 국내 렌터카 업계 1위업체인 kt금호렌터카는 최근 BMW와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는 물론 피아트, 크라이슬러 등 여러 수입차 브랜드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장기렌터카의 라인업을 크게 확대했다.

 현대캐피탈도 장기 렌터카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추세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렌터카 업체인 에이비스는 2013년 1월 세계 최대의 카셰어링 업체인 집카를 5억 달러에 인수했다.

 BMW그룹은 렌터카 회사 식스트(Sixt)와 합작해 2011년 독일에 ‘드라이브 나우(DriveNow)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다임러AG의 카투고(Car2go)와 푸조시트로앵그룹(PSA)도 관심을 보인다. 국내에선 현대자동차가 장기 렌터카 이용자 증가 등 자동차 소비 패턴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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