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타일러 라쉬의 비정상의 눈

외국 유학의 가장 큰 이득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타일러 라쉬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미국에서 다니던 고교에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다. 영어로 말할 때 약간의 한국 악센트가 있다는 것과 기숙사에서 라면을 먹고 가끔 김을 나눠 준다는 것 말고는 미국 학생과 별 차이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들을 못 보다가 거의 8~9년이 지나 한국에서 다시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질문부터 받았다. “고교 시절엔 한국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네가 왜 지금 이 카페에서 나랑 한국어로 수다를 떨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왜 한국에 유학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간단히 설명할 순 없지만, 핵심만 말하자면 내가 살아온 곳과 다른 곳에서 살면서 뭔가를 깨닫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고향 버몬트에서 시카고로 이사했을 때와 똑같은 이유다. 버몬트는 사람이 적어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다. 길 가다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라도 서로 인사한다. 운전하면서 경적 소리를 내면 지나는 사람에게 인사하려는 것이다. 인도를 걷다 경적 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돌려 차 안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당연하다. 서울에서 산 지 꽤 됐는데도 옛 습관이 몸에 배서 그런지 아직도 경적 소리를 들으면 괜히 차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시카고에 살 때 경적 소리가 인사가 아니란 사실을 배웠다. 모르는 사람에게 웃음 지으며 인사하면 남의 사생활에 개입하려는 수상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를 경험하면서 내 행동 중 버몬트스러운 부분이 무엇인지,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 만약에 시카고에 가보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런 걸 알게 됐을까 싶다.

 유학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배우는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버몬트에서 시카고로 이사했을 때처럼 환경을 바꿈으로써 자아를 새롭게 깨닫는 중요한 계기를 얻을 수도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미국에서만 계속 산 사람은 자기가 다른 미국인과 어떻게 다른지 깨닫기 어렵다. 하지만 해외에서 생활해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떤지 점점 더 잘 파악되는 것 같다.

 요즘 한국으로 유학 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기업과 대학·정부 차원에서 격려하기도 한다. 한류 때문일 수도 있고, 한국 학비가 그런대로 국제적 경쟁력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국에서 특별히 잘하는 학문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학의 가장 큰 이득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잘 깨닫는 게 아닐까.

타일러 라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