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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다 … ‘심신 건강한 사람’ 구인 공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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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취업 관문에서 장애가 있는 신체는 그야말로 장애물입니다. 일반 청년 실업률이 9%인 데 반해 장애인 청년 실업률은 13.5%에 달합니다. 이 수치는 ‘장애 청춘’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청춘리포트는 장애 청춘 6명을 만났습니다. 취업 문턱에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험난한 장애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취업난은 장애 청춘들에겐 더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왼쪽부터 김선영(27세) 지체장애, 정선희(23세) 언어·청각장애, 김준형(23세) 시각장애, 김희진(21세) 시각장애, 류창동(25세) 시각장애, 박준범(20세) 시각장애.

5일 오후 서울 중구 중앙일보 스튜디오에 청춘 남녀 6명이 모였다. 누가 봐도 발랄한 20대들이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이다. 지팡이를 두드리며 더듬더듬 자리를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손짓으로 글씨를 짚어 가며 대화를 했다. 한 여성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느릿하게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이들의 정체가 궁금하신가. 그렇다면 우선 자기 소개부터.

 ▶박준범(20)=“단국대 특수교육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요. 시각장애 1급이거든요. 이 가운데 제가 막내 같네요? 하하.”

 ▶김희진(21)=“한양대 경제금융학부에 재학 중입니다. 저도 시각장애 1급입니다”

 ▶김준형(23)=“배재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입니다. 준범씨나 희진씨처럼 저도 시각장애 1급이죠. 시각장애인 대학생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류창동(25)=“서강대 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시각장애 1급이에요.”

 ▶김선영(27)=“저는 지체장애로 다리가 좀 불편해요.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요. 졸업하고 취직 원서를 수없이 넣어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현재 백수 신세예요.”

 ▶정선희(23)=“저는 전문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어요. 선천성 안면 기형과 언어·청각 장애가 있어서 말하고 듣는 게 조금 불편하죠. 취업이 어려워 고민이 많았는데, 공부를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국민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어요.”

 그래,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게다.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부터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던 것은. 이날 중앙일보 스튜디오를 찾은 6명의 청춘 남녀는 시각·청각·지체 장애가 있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청춘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었다. 청춘리포트는 이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장애 청춘’으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비장애인도 넘기 힘들다는 취업 장벽 앞에서 장애가 있는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은 얼마나 더 큰 좌절을 겪고 있는지….

 -전공들도 다양한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으세요.

 ▶준범=“교사가 아니더라도 교육 관련 일에 종사하고 싶어요.”

 ▶선영=“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아동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장애 탓인지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희진=“지금 전공(경제금융)을 좋아하는 만큼 금융권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선희=“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지만 취업이 쉽지 않으니…. 우선 대학원에 진학해 더 배워보려고요.”(※청각 장애가 있는 선희씨는 기자가 노트북 화면에 띄운 글을 보면서 더듬더듬 대화를 이었다.)

 ▶준형=“저는 전공이 많아요. 주전공 경영학에 부전공은 행정학, 사회복지학과와 신학은 복수전공입니다. 공부에 욕심이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취업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기도 해요.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를 목표로 삼고 있어요.”

 ▶창동=“대학 생활 8년 차(08학번)지만 여전히 직업을 찾는 과정입니다. 장애인들이 특정 직업을 가지려면 비장애인들에 비해 몇 배 이상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교사, 사회복지사, 시민운동가, 금융직…. 예상보다 다양한 직업군이다. 하긴 미래를 꿈꾸는 데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명백히 다르다. 장애가 있는 취준생이 마주해야 하는 장벽은 비장애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고하고 높은 듯했다.

 -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장 답답한 건 뭔가요?

 ▶준형=“간접적으로 차별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을 뽑겠다고 해놓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조건이 모집 공고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식이죠. 면접 도중에 한 번 걸어보라면서 수치심을 주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긴 해요. 하지만 중증 장애인보다 경증 장애인이 주된 대상이죠. 장애인 의무 채용 제도가 실제론 경증 장애인을 선발하는 제도처럼 운영되고 있어요.”

 ▶선영=“지난해 졸업 후 지역 아동센터 40여 곳에 원서를 넣었는데 다 실패했습니다. 면접관이 “몸이 불편한데 네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질문해요. 심지어 “ 운전면허도 안 따고 뭘 했느냐”며 타박하기도 했죠.”

 - 어학연수 등 스펙 쌓는 것도 많이 힘들죠?

 ▶희진=“영어나 중국어 학원을 다니려 해도 칠판 수업으로만 진행되니 저 같은 시각장애인은 할 수가 없어요. 인터넷 강의로 소리를 들으며 겨우 뒤따라가는 정도예요.”

 ▶준범=“국가직 시험을 보려면 교재를 점자로 일일이 바꿔야 해요. 준비 시간이 많이 걸리죠. 비장애 학생들은 모집 공고가 뜨면 바로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출발선부터가 다른 거죠.”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창동=“몇 년 전 한국사 검정시험을 치르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에 전화를 걸었어요. 시각장애인이 시험 볼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전례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직접 국사편찬위 사무실에 가서 담당 직원을 만났습니다. 그분에게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답안 대리 마킹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어요. ‘그렇게 해봅시다’ 해서 시험을 치렀더니 1급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험 양식이 계속 제공된다고 하더군요. 변화를 위해선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희=“장애가 있든 없든 취업난은 청춘들에게 똑같은 문제 아닌가요. 서로 연대감을 가지고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3시간째. 어느덧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슬슬 허기가 찾아들었다. 인근 순댓국집으로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비장애인 기자와 장애 청춘들이 순댓국을 놓고 마주 앉았다.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흐릿해졌다. 겨울이 깊어 가는 늦은 밤. 머리 아픈 취업 얘기 대신 각자의 연애담으로 우리는 내내 유쾌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글=정종훈·신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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