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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줌마라고 부를 겁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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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예전에는 나를 ‘여류 사진작가’라고 했다. 남자는 ‘사진작가’, 여자는 ‘여류 사진작가’다. 발음 때문인지 ‘아류’ 취급하는 것도 같고, ‘비주류’도 같고. 듣기 싫었다. 걸핏하면 ‘여류’를 여기저기 잘도 갖다 붙였다. 여류 소설가, 여류 화가, 여류 변호사까지. 그런데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 여성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탓일 게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을 ‘여류’ 아니, ‘아류’로 취급하는 곳이 있다. 머지않아 여군 1만 명 시대라는데 끊임없이 터지는 성폭력 사건으로 시끄러운 곳, 바로 군대다.

 육사 출신 3성 장군으로 기무사령관까지 지낸 송영근 의원이 국회 ‘군 인권개선과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 공개발언 중 망언을 했다. 여군 부사관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육군 여단장 사건에 대해 ‘지난해 거의 외박을 안 나가서… 성적인 그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하면서 피해 여군을 ‘그 하사 아가씨’라고 부른 거다.

 누군 그러더라. 군인에게 군인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한 게 뭔 큰 잘못이냐고. 그렇다면 공개발언 석상에서 남자군인에게 과연 ‘하사 총각’ 할 수 있을까. 대통령도 ‘대통령 아줌마’라고 부를까 봐 겁난다. 장소에 따른 적절한 호칭은 필수다. 호칭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적인 문제가 발생하니…’란 말끝에 그가 내뱉은 ‘아가씨’라는 말. 이것은 하사를 군인 아닌 여자로 봤다는 걸 의미한다.

 곧바로 그는 사과했다. 하지만 40년의 군 생활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여군은 곧 아가씨’였던 게다. 성폭행 이유도 ‘외박 못 나가 그런 것이니 우리가 측면을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일반 사병의 경우엔 외박을 나가는 경우가 몇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라던데 그럼 그들은 여차하면 사고를 낼 수밖에 없는 잠재적 범죄자들이란 말인가. 군 인권개선과 병영문화 혁신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국회 특별위원회 위원의 도덕적 가치관과 젠더 의식이 딱 이 수준이다.

 현역 대장인 장모 1군사령관은 ‘여군들도 (싫으면) 본인이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라’고 했다는데. 착각 마라. 군 상관의 성희롱은 갑질 중 최상의 갑질일 뿐 그걸 좋아할 부하는 없다. 폐쇄된 군 특성상 받을 불이익이 불 보듯 뻔하고 두려워 참을 뿐이다. 성희롱. 무조건 안 하면 된다. 육군에서 성군기 위반에 ‘원 아웃’ 제도를 검토 중이란다. 앞으로는 외박을 못 나가도 여군이 여자로 보이지 않고 동료 군인으로 보일 게다. 참 다행이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