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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도 직장인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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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불행’ 시리즈에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됐다. 가난한 노인(노인 빈곤율 1위), 살기 힘든 아이들(어린이 삶의 만족도 최하위) 등에 이어 이번엔 교사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OECD 34개 회원국 중학교 교사 10만5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는데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20.1%로 가장 높았단다. OECD 평균 9.5%의 두 배가 넘는다. “다시 직업을 택한다면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답도 36.6%였다. 역시 OECD 평균 22.4%보다 높다.

 그런데 이 수치를 보며 ‘후회하는 사람이 20%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한 건 필자뿐인가. 편차는 있겠으나 어떤 직종이든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나. 교사가 한국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며 봉급 수준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높은 편에 든다지만,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자주 능력 부족을 실감하고, 때로는 회의감에 시달릴 거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깨달은 거지만 초·중·고를 다니며 만난 선생님들도 그냥 한 명의 부족한 인간일 뿐이었다. 물론 유독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은 망치를 들고 수업에 들어왔다. 진짜다. 물론 작은 망치였고, 그걸로 아이들을 후려치거나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요즘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 제소감이 아닐까 싶다. 성숙하지 못한 대처로 상처를 준 선생님도 있었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순간을 선사한 고마운 분들도 있었다. 교내 백일장에서 탈락해 낙심한 내게 “상은 못 주지만 나는 너의 글이 좋다”고 말해줬던 중학교 때 (미남) 국어선생님처럼.

 교사란 직업이 성장기의 아이들을 대하는 일인 만큼 더 특별한 직업윤리와 절제, 인내심이 요구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남기는 비정상적인 소수를 예외로 한다면, 결국 선생님도 저마다 다른 성품과 개성을 지닌 사회인·직장인일 뿐이다. 후회 한 점 없이 늘 행복한 직장인을 보셨는가. 교사의 20%가 직업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의 미래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되어 당연히 만나게 될 다양한 인간 유형을 선생님들이 미리 보여주고 있을 뿐. 그 가운데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따뜻하게 보듬는 선생님이 조금 더 많아진다면 그걸로 좋지 않을까.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