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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완구를 보며 진형구를 떠올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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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①그때도 기자 서너 명이 모인 자리였다. 16년 전 무대는 대검 공안부장실, 이번엔 여의도 김치찌개집이다. ②두 사건 모두 한국일보 기자가 관계돼 있다. 그땐 그 신문사가 앞장서서 보도를 했고, 이번엔 소속 기자가 녹음만 하고 기사는 쓰지 않았다(‘못했다’일 수도 있다). 녹음 파일은 야당 의원에게 흘러갔다. ③사건을 키운 건 모두 다른 언론사였다. 그때는 한겨레신문이었다. 한국일보와 함께 저녁판(당시에는 저녁에 다음 날 조간의 초판이 배포됐다)부터 기사를 썼는데 한겨레는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이번엔 야당 의원에게서 녹음 파일을 받은 KBS다.

 ④문제의 발언은 ‘자기 자랑’이었다. 진형구 당시 공안부장(훗날 고검장으로 퇴직)은 “조폐공사 파업 유도로 공기업 구조조정 반대 여론을 잠재웠다”고 치적을 내세웠다. 재판의 결론은 ‘과장 발언’이었다. 허세를 부렸다는 얘기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는 “기자들 교수, 대학 총장 시켜줬다. 기자를 위해 김영란법 통과도 막았다”고 호기롭게 얘기했다. 건국 이래 기자 출신이 대학 총장이 된 경우가 두세 건밖에 없으니 허풍일 가능성이 크다. ⑤발언 배경에는 자신의 능력을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깔려 있다. 진 부장은 대전고검장으로의 발령에 불만이 있었다. 당시 DJ 정부에선 호남 출신들이 검찰 요직을 차지했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흠결을 들춰내는 언론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⑥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들은 도덕적 고민에 빠졌다. 둘 다 사석에서 비보도를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한 발언이었다. 이번에는 몰래 녹음까지 했다. 16년 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⑦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실제로 파업 유도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수사팀이 꾸려졌고,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진 부장은 국회로 불려가 사과했다. 문제의 발언을 하기 직전 점심시간에 폭탄주를 마셨던 그는 “왜 폭탄주를 마시느냐”는 의원의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 맥주에 타 마신다”고 대답했다. 이 후보자도 국회 청문회장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⑧정권에도 타격을 안겼다. 김태정 법무부 장관이 사표를 냈고, DJ 정부는 ‘옷로비 사건’에 이어 연타를 맞았다. 지금 박근혜 정부도 매우 곤혹스럽다. ⑨공교롭게도 두 사람 이름의 끝자(九)가 같다.

 진 부장 사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조폐공사 구조조정에 제3자로서 개입한 죄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로 마무리됐다. 이 후보자 사건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어렵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