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O 결의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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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분쟁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다루는 유엔안보리와는달리,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민간항공기의 안전운항을 가장 중요한 관할업무로 하는기구다. 그래서유엔안보리에서는 대한항공여객기격추사건에 대한 소련규탄과 배상요구결의안이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채택이 저지되었지만, 국제민간항공기구의 특별이사회에서만은 소련만행에 대한 인류의 공분을 수렴한 결의안이 문제없이 채택될것을 우리는 기대했었다. 그러나17일새벽(한국시간)채택된 결의안은 소련의 여행기격추를 강력히 규탄하고 희생자유족들에게 응분의 배상을 요구하는 핵심부분이 빠진, 우리입장에서 보면 「김빠진 맥주」같은것이라고 밖에 평가할수가 없다.
현지에서 들어온 보도를 보면 한국을 적극 지지하는 서방10개국 대표들이 제안한 결의안의 「이빨」 이 빠진것은 비동맹 19개국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동맹국가들은 소련을 강력히 규탄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하기전에 철저한 진상조사부터 하는것이 일의 순서라는, 듣기에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강력한 결의안을 무력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소련을 곤경에서 구해 주였다.
문제의 대한항공 여객기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소련영공을 침범한 사실과,소련전투기가 비무장의그 여객기를 공대공미사일이라는 절대무기로 격추하여 2백69명의 선량한 사람들을 대량학살한 사실은 티끌만큼도 의심할 여지없이 밝혀진 마당에 소련규탄과 배상요구에 더이상의 무슨 조사가 필요하다는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다.
정치성이 없어야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인도.이집트가 앞장선 비동맹국들이 소련의 비위를 맞추고 도식적인 중립자세를 지킨답시고 소련의 만행에 대한 인류의 분노를 묵살한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통과된 결의안에는 국제조사단에 의한 공정한 사건조사, 관계당사국의 적극 협조, 사건재발을 방지하기위한 관련법규의 개정과 강화를규정하고 있으니 우선은 이 결의안의 실행을 기대하고 지켜보는수 밖에없다.
그러나 소련이 지금까지 사고 해역에서 한국·미국·일본선박들의 접근까지 방해하고 있는것으로 보아서 사건의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와 관계당사국의 하나인 소련의 적극 협조는처음부터 기대할수가 없는 일이다.
소련 만행을 국토보전의 정당한행위라고 주장하고 말없는 사자들과 미국에 첩보비행의 혐의까지 뒤집어 씌우면서 계속 버틸수 있는 것은 세계여론이 물끓듯 하는것과는 달리소련에 대한 제재조치는 미지근하기 짝이 없는데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민간항공기구의이사회에서 소련규탄과 배상요구의 조항을 잘라낸 비동맹국들은 오히려 소련의 발뺌과 만행의 정당화를 간접으로나마 지원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좀 심하게 말하여 그들이 소련의 「공범자」 라는 지탄을 받지 않으려면 국제민항기구 사무총장이 조사결과를보고하게 되어있는 30일의 시한이 무위로 지난 뒤에는 유엔총회와 국제민항기구의 특별회의에서 소련을 강력히 규탄하고 응분의 보상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그들 자신이 앞장서서 추진해야 할것이다.
어려운 분위기에서 이 정도나마 결의안 채택을 실현시키고 토의과겅에서 설득력 있게 소련의 거짓을 고발한 우리대표들의 노력에는 뜨거운 갈채를 보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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