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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금융·산업 분리 재검토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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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분배와 형평은 성장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도 재검토해야 한다."

윤증현(사진) 금융감독위원장이 30일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금융연구원 주최 정책세미나에서 소신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모두 정부.여당의 공식 입장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견해다. 윤 위원장은 정부 내에서 대표적인 친시장 관료로 꼽힌다.

◆"성장이 우선"=그는 기조연설을 통해 성장과 분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했다. 윤 위원장은 "성장과 분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구성원 간 합의"라고 전제한 뒤 "분배와 형평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투자와 기술 개발을 바탕으로 하는 성장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 때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 효율성을 높일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실제로 정책이나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과 능력이 있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만을 좇다가 사회적인 자원을 낭비하는 일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고도 했다. '분배를 강조하기에는 아직 국부가 충분치 않다'는 게 윤 위원장의 지론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정책에 대해 그는 "아직 필요하고 당분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정된 국내자원의 최적 동원을 위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산 분리의 최대 쟁점인 생명보험사 상장에 대해 평소 "국내 자본시장의 육성을 위해 생보사 상장이 필요하다. 재무구조가 우량한 생보사가 상장을 신청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윤 위원장은 정부 개입에 대한 엄격한 제한과 기업가 정신 고취도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왕성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일"로 규정했다. 기업에 대해서는 "우리 경제와 시장경제 체제의 발전을 이끄는 원천"이라고 치켜세웠다.

◆"은행은 역할 고민해야"=윤 위원장은 사상 최대 이익을 구가하고 있는 은행에 대해 작심한 듯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금융 부문은 수익성 추구에서 한 걸음 나아가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경제 회복이 늦어지면서 다수가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이 '사상 최대의 수익' 운운하는 것은 고운 시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금융계의 수익성이 호전된 것은 구조조정의 고통을 이겨낸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성과가 금융권 스스로만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적자금 투입 등 국민의 도움을 크게 받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공적 지원을 받은 기업이 회생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실적 호전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은행 스스로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들이 최근 올리고 있는 수익 중 25% 이상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돈으로 사들인 부실기업의 주식에서 생긴 평가차익 등 '1회성 수익'이 차지하고 있다. 은행들은 또 휴면예금을 잡수익으로 처리해 오다 정치권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뒤에야 자체 공익재단을 만들겠다며 '밥그릇 지키기'에 나서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은행들의 이익 배분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주주 이익도 중요하지만 영업 환경 악화 가능성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수익의 급변동이 없도록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시중은행 지분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갖고 있는 현실에서 배당보다 내부 유보를 통해 금융산업 발전에 힘써달라는 주문이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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